2012. 5. 8. 23:33ㆍ묵상하는말씀/마가복음서묵상
마가복음묵상65] 내 삶의 중심, 내 삶의 이유가 어디있느냐에 따라 나의 외침, 나의 선포, 나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막15:33-38)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셨던 7가지 말씀 중 하나입니다.
마태와 마가에 공히 기록된 이 토로는 인간의 극심한 고통가운데의 절규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마치 이 말씀이 아버지께 불만스런, 못마땅한 소리처럼 들립니다.
물론 인간의 몸의 한계를 지닌 사람으로 십자가의 고통은 너무도 힘들고 아픕니다.
견디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처형자들이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저주하고 운명을 저주하며 죽어갔습니다.
나의 인생이 비참함을 토로하며 육신의 고통보다 더 큰 가슴의 고통을 쥐어짜며 죽어갔습니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은 버림받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중심을 잃은 마음의 고통, 쓰임받는 인생이 아닌 버림받는 인생으로 인정해야하는 고통이 가장 큽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우리의 마음의 고통을 대변해 주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자식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지만 결과는 버림받는 고통이 주어집니다.
낮은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이타적으로 살았지만 결국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진리와 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진리와 의보다는 불의와 거짓이 이기는 세상을 보는 고통을 당합니다.
사랑이 있고,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외침은 단순한 고통의 토로가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 앞에서 인생을 저주하는 외침과 다른 것은, 그의 외침의 끝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향한 울부짖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로 번역된 말은 "어떤 목적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목적으로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외침의 방점은 "버리심"이 아니라 "어떤 목적"에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외칩니다.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의 목적에 쓰임받기를 외칩니다.
우리는 고통의 경중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중심, 내 삶의 이유가 어디있느냐에 따라 나의 외침, 나의 선포, 나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