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묵상69]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축복은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막16:15-20)
성경에는 원본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성경은 필경사들에 의해 쓰여진 발견된 사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우리가 읽는 마가복음의 마지막부분은 각종 사본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위를 인정받는 사본들에는 마가복음이 16장 8절에서 끝납니다.
또 어떤 사본은 9절에서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모든 일을 알려주고, 복음이 퍼져나갔다는 것으로 마치죠.
이것을 신학자들은 마가의 짧은 끝맺음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9~20절까지의 글은 긴 끝맺음이라고 부르겠죠.
어쨌든 마가복음이 16:8에서 끝난다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아마도 마가복음16:9~20은 후에 각 사본에 삽입된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혹시 성경에 후대 삽입된 글이 있다는 말에 신경쓰이십니까?
마가복음에 부활에 관한 직접적 기록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그런데 저는 오히려 마가복음에 부활에 관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는 오늘의 본문에서 더 큰 은혜의 묵상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부활이라는 이슈에 그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자녀들에게 바통이 넘겨지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에게 달려가 복수를 하시거나 세상의 왕이 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부활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부활은 이제 우리에게 넘겨져 우리의 삶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부활은 내 삶의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광야의 시험에서 승리하셨듯 우리도 늘 곁에서 우리를 속이는 영을 분별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이전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로운 영,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나서려지 않는, 뱀처럼 보이는 사역의 지팡을 들어야 하고, 아무도 마시려하지 않는 사랑의 독배를 들어야 합니다.
영적 긍휼로 손을 들고 기도해야하고, 내 자신을 못박아 용서의 피를 흘려야 합니다.
세상은 이 삶이 어리석은 삶이지만 주님은 지혜로운 삶이라 하십니다.
세상은 지고, 당하고, 손해보는 일이라고 하지만 주님은 하늘 복의 근거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부활의 씨라고 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축복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바로 부활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죽으니 살게 하시고, 낮추니 높이시고, 눈물 지으니 위로하시고, 피흘리니 감싸시는 부활이 우리 삶에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마가복음 16:8 이후는 바로 우리가 써내려가야 하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