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88)
요한복음서묵상88 -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복음21:20-25) 4월과 함께 요한복음을 마칩니다. 이번 요한복음은 저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듬뿍 던져준 시간이었습니다. 읽을수록 재미있고, 또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들이 신선한 충격을 주시고 했고요.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말씀 묵상에 무슨 규칙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느끼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아요. 마치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마지막 끈을 잡고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말씀도 놓치지 않고 매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때론 막히고, 때론 이해되지 않아도, 그래도 말씀의 끈을 놓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필요한 듯 보여요. 저는 목사지만 매일 새벽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부족한 지혜에, 졸필로는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매일을 놓치지 않고 말씀..
요한복음서묵상87 - 사랑은 상대방에게 나를 맡기는 거예요.(요한복음21:15-19) 오늘도 본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아는 내용이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이 부분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표적인 대화 내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지죠. 세 번을 물으시는 것을 베드로의 세 번 부인과 연결하는 해석도 있고, 베드로에게 용서와 사명을 동시에 제공하는 내용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표현을 두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죠. 예수님은 아가페(무조건적인 사랑)라는 단어를 쓰시는 반면에 베드로는 필로스(우정을 뜻하는 사랑)로 대답하는 것으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간극을 조명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떤 해석이든 베드로에게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대화일 것은 분명하고요. 이 대화를 어떤 측면으로 해석하든 베드로는 실제로 교..
요한복음서묵상86 - 믿음은 결과가 아닙니다.(요한복음21:1-14) 오늘 본문도 우리가 잘 아는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내용은 굳이 설명 드리지 않겠습니다. 잘 아시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본문을 읽어볼 때 굳이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들이니까요. 다만 이 본문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성경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잖아요? 이 장면의 장소는 이전 예루살렘에서와 달리 갈릴리호숫가입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 호수는 먼 거리입니다. 약 150Km 정도 떨어져 있죠. 그들이 갈릴리로 간 이유는 아마도 그곳이 그들의 집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배를 탔던 것으로 보아 자신들의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죠. 마치 3년간의 제자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자신의 옛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
요한복음서묵상85 - “본다고 믿어지는 게 아니야! 믿어야 보여지는 거야!”(요한복음20:24-31)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 도마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어제 주일공동체예배 설교에서 이미 말씀드렸죠.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나시는 장면에서 특별히 도마와의 에피소드가 도드라집니다. 이 장면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된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흘려버릴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죠.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던 것이죠. 우리의 결단과 행동은 보고 보지 않고에 있지 않습니다. 본다고 믿는 것도, 보지 않는다고 안 믿는 것도 아니죠. 알면서도, 보고 확인했으면서도 안 믿고 싶은 사람은 어떤 트집을 잡아서라도 안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에는 보는 것에서, 혹은 확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본다고 믿어지는 게 아니야..
요한복음서묵상84 - 성령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길잡이입니다.(요한복음20:19-23) 저의 아버지께서 제게 남긴 유언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거의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셨는데요. 어느 날 잠깐 저와 눈이 마주치시고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그 말씀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마치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던지신 명령과도 같은 말씀처럼 말이죠. 제자들은 불안에 떨었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승이었던 예수님은 신성모독과 내란의 목적으로 처형을 당한 상태라 그 죄목이 언제 그들에게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죠. 대제사장 집 뜰 안에서 베드로가 사람의 시선을 피하며 떨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문을 모두 걸어 두었다는 표현이 그들의 불안과 공포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현현하셨습니..
요한복음서묵상83 -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요한복음20:11-18)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부활의 증표를 보고도 전혀 믿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표현은 뭔가 좀 맹숭맹숭하죠? 부활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조차 없었을지라도 시신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충격일 텐데 그들의 반응은 뭐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네요. 이에 비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뭔가 아쉬웠는지, 아니면 좀 더 이런 상황에 대한 의문이 컸는지, 혹은 시신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애를 썼는지, 무덤가에서 서성였던 것 같아요. 그것도 울면서 말이죠. 마치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려서 울며 찾아 어린아이처럼 말이죠. 그러고 보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간절한 사람이 있고, 되어도 그만 안되어도 그..
요한복음서묵상82 -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요한복음20:1-10)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장사되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무덤은 아리마대 요셉이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를 예수님의 고난의 과정과 십자가의 죽으심까지 현장에서 목격했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 광경까지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덤의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면 말이죠.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놀란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찾아서 이를 알리죠. 베드로와 요한은 단숨에 달려갑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시신이 탈취되어 훼손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을 테지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마치 달리기 시합을 중계하는 듯한 내용이죠. 같이 뛰었는데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젊어서였을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뒤늦게 도착한 베드로가 무..
요한복음서묵상81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나는 누구입니까?(요한복음19:31-42) 오늘 본문 첫 구절에서 한동안 눈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이 곧 오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빨리 죽이려고 하죠. 안식일에는 시체를 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이 충격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사람을 빨리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더욱 충격은 그 모습이 별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남들을 짓밟았을까요? 나와 다른 종교나 신앙을 적대시하고, 저주하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뉴스에 나온 이야기인데요. 주일에 교회 예배를 위해 모인 교인들이 주택가에 주차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것 때문에 주민과 마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