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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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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묵상80 - 감사는 나의 작은 믿음을 통해서도 열매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19:28~30)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죽음을 목전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다 이루었다” 이것의 영어적 표현은 "It is finished."입니다. 우리말로는 ‘다 끝났다’는 말이죠. 참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똑같은 말을 들을 때 전혀 다른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한다는 것입니다. ‘다 끝났다’를 “끝이야 끝! 이제 난 다 틀렸어..”라고 자포자기의 의미로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드디어 끝났구나! 다 했어! 오케이 굿!”이라고 환호를 지르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이것이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나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분명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환희의 독백입니다. 자포자기의 ‘끝’은 과거를 염두 해 둔 일이지만 환희의 ‘끝’은 미래를 바라보고 내뱉는 고백이죠. ‘다 이루었다’의..
요한복음서묵상79 - 함께 있어서 사랑입니다.(요한복음19:16~27) 오늘 본문은 여러 사건이 나열되어 있네요.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들 손에 넘겨주었고, 이는 곧 처형을 허락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처분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 바로 골고다로 예수님을 이끌죠. 그 고난의 과정을 사도 요한은 짧게 전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희롱이 있었고, 그 희롱마저 서로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윗사람들은 문구 하나로 싸우고, 아랫사람들은 옷 하나로 싸우죠. 어쩌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추악함은 희생양 하나를 짓밟는데 자비란 없습니다. 육체의 아픔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마저 할 수 없게끔 잔인한 난도질을 멈추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이기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사건보다 오늘 저에게 들..
요한복음서묵상78 - 나에게 주어진 영적인 주권도 행사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요한복음19:1~16)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태형에 처합니다. 느닷없이 매질과 모욕을 한 이유는 아마도 그쯤 해서 예수를 풀어주고 싶은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받은 신뢰감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18장 마지막 부분에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에 대해 질문하죠. 요한복음은 더 이상 그 대화의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질문과 동시에 빌라도는 자신의 마음을 굳힙니다.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는 판결이죠. 이것으로 재판은 끝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판단과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유대인들의 반응에 끌려다니죠. 그들이 맹렬한 기세로 몰아붙이자 빌라도는 한 걸음씩 물러섭니다. 분명 아니라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한복음서묵상77 - 모든 것이 나와 상관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18:33~40) 이제 본격적인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대화가 아니라 심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행스럽게도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이 대화의 내용을 요한복음은 상세히 기록하고 있네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아예 예수님께서 묵비권을 행사하시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죠. 아무튼 이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지배자인 빌라도와 피지배자인 예수, 반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와 그를 바라보는 죄인 빌라도. 어떤 시각, 어떤 믿음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마주합니다. 그래서 이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심문인 관계로 빌라도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의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질문을 잘 보세요. 질문이 조금씩 변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
요한복음서묵상76 - 나만의 거룩은 없습니다.(요한복음18:28~32)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던 예수님은 이제 로마 총독 앞으로 끌려갑니다. 총독 빌라도와의 대면이 이루어지죠. 아무리 자치정부의 형태를 띠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엄연히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예수님의 처형을 위해서는 총독의 재가가 필요했을 테지요. 결국 빌라도의 판결로 예수님의 사형은 결정되는데요. 오늘은 그 과정 가운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보여준 이중성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 끌려가신 때는 유월절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에게 중요한 명절이죠. 마침 오늘이 이스라엘의 유월절 종료일이군요. 유월절은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표를 문설주에 바른 이들에게는 죽음의 권세가 넘어간다는 의미..
요한복음서묵상75 -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요한복음18:12~18) 오늘 본문은 장면이 바뀌어 이야기는 대제사장 집 앞에서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수님은 잡히셔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당하고, 제자 베드로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죠. 베드로는 역시 수제자였습니다. 스승인 예수께서 사형에 처해질 만큼의 죄목으로 붙잡혀갔다면 제자들도 위험한 상황일 텐데요. 그는 예수님을 끝까지 보려고 소위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말이죠. 한번 정도라면 실수라고 여겨줄 만 하지만 세 번이면 자신의 의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사건은 유명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다른 복음서와는 조금 다른 서술 형태를 띠죠. 그것은 예수님의 심문 장..
요한복음서묵상74 -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요한복음18:1~11)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의 기술과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명한 겟세마네의 기도가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17장에 기록된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겟세마네의 기도로 대체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겟세마네라는 장소도 등장하지 않는데요. 오늘 본문에 보니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서 동산으로 가셨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그곳이 겟세마네 동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도 공관복음의 기록과 약간의 차이가 있죠? 아무튼 그곳에서 대제사장이 보낸 로마 병사들과 마주합니다. 로마 병사들이 꽤 많이 왔던 것 같아요. 3절에 ‘군대’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적게는 100여 명에서 많게는 600명에 이르는 부대 단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로마 쪽에서는..
요한복음서묵상73 - 서로 사랑함이 답입니다.(요한복음17:20~26) 오늘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본문입니다. 기도의 마지막이다 보니 기도의 핵심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 이유와 또 바람을 말씀하시고 계시죠. 그 핵심 구절은 21절입니다. 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것 같이 우리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죠. 다른 말로 말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뜻이겠죠? 그 이유도 밝히고 계신데요. 그 사랑 안에서, 그 하나 됨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요. 요한복음 13장 말씀이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