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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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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묵상64 - 우리의 기준은 ‘사랑’입니다.(요한복음15:1~17) 오늘 본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가끔 성경을 읽다 보면 부분적으로 볼 때가 있습니다. 어떤 구절 일부를 떼다가 그것만을 집중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가 왜곡될 때가 있죠. 오늘 본문도 조금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는 말씀의 구절마다 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의 제목에는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 제목이 맞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여서, 그 가지가 나무에 머물러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내용이죠.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목만을 놓고 보면 우리는 이 구절을 생물학적 의미로만 보게 될 때가 있어요. 뿌리가 되는 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
요한복음서묵상63 -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요한복음14:25~31) 오래전에 티브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아마도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화가 한 분이 나온 거죠. 화가라면 뻔하지 않습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주특기겠죠. 그런데 그분에게는 다른 특별한 기술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그런 기술이었어요. 가령, 종이에 누군가 낙서를 해 놨거나, 옷에 잉크가 쏟아졌거나, 벽에 지저분하게 페인트가 뿌려졌거나 하면 닦아내거나 버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낙서가 된 것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어떤 낙서라고 할지라도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기술이 그분의 특별한 능력이었죠. 전혀 다른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을 보고 있..
요한복음서묵상62 - 서로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요한복음14:15~24) 오늘 말씀이 한 번에 읽히셨다면 천재시거나 성령으로 충만하신 겁니다.^^ 저는 조금 전까지 한 열 번 정도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마치 선문답하는 사려 깊은 철학자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갖는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맥락을 중시한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기보다는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전체 대의라고 하죠.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단편적인 단어의 유희보다 전체 말씀의 흐름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전체 문장을 여러 번 읽어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원칙은 그 전체 주제 안에서 말씀을 바라본다는 점이죠.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바라보는 것입니..
요한복음서묵상61 - 길이 되고 진리되고 생명되는 오늘을 사세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깊이 있는 당부를 하십니다. 나와 같이 하자고 말이죠. 계속해서 마지막 만찬의 말씀이 변혁을 요구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가룟 유다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계획이 아닌 주님의 생각과 뜻을 품으라고 말씀하시죠. 어제 주일설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신앙은 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도구 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내가 도구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은 너무 유명한 구절이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외울 만큼 익숙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익숙함과는 반대로 이 구절의 뜻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분들은 그리..
요한복음서묵상60 - ‘괜찮아, 다 잘 될거야’(요한복음14:1~4) 오늘 본문도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같은 맥락의 말씀이지만 짧게 끊어서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 주제를 꼽자면, ‘근심하지 말라’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아마도 제자들을 홀로 남기고 떠나시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승이 보이지 않으면 두려워하고, 염려할까 봐 하시는 말씀이죠.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로 보면 언제나 염려와 근심을 달고 사는 우리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따져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근거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걱정이 안 된다면 정말 걱정이 없겠죠. 걱정과 근심이란, 불안한 미래와 어찌 될지 모르는..
요한복음서묵상59 -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요한복음13:36~38) 아마도 예수님의 의미심장한 말씀에 베드로는 뭔가 낌새를 느낀 모양입니다. 어디로 떠나실 것 같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했던 베드로기에 장담하며 나서죠. 목숨을 바쳐서라도 함께 하겠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장담은 질투의 발로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수제자이니까요. 가끔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일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베드로가 그런 경우인지 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이어지는 예언으로 보아서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장담은 아닌 것으로 추측이 되네요. 요한복음 13장이 저는 새롭게 들립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읽히기 때문입니다. 13장을 흐르는 메시지는, 이전의 생각을 벗어야 새로운 생각을 심을 수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나..
요한복음서묵상58 - 서로 사랑함이 가장 큰 예배입니다.(요한복음13:31~35) 어제 묵상에서, 마지막 만찬을 가룟 유다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드렸죠? 물론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를 향한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13장을 보면 어떤 메시지의 패턴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죠. 왜 그는 예수를 배반했을까요? 단순히 악한 생각이 들어와서요? 그렇다면 왜 악한 생각이 들어왔을까요? 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의 생각의 습관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또, 그의 생각의 습관은 무엇이었을까요? 가룟 유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해보면, 그는 단순히 탐욕에 가득 찬 욕심쟁이가 아닙니다. 그는 합리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목적이 ..
요한복음서묵상57 -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언제나 내 안을 밝게 만드세요.(요한복음13:21~30) 마지막 만찬의 자리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제자들과 만찬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고, 새 계명도 주십니다. 그 와중에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에게 빵을 건네는 장면이 등장하죠.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이렇게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이유들이 분명히 있으신데요. 저는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꼽는다면 단연코 가룟 유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3장의 서두에 요한복음의 저자는 마지막 만찬을 알리면서 이런 대목을 적고 있죠. 요 13: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이 대목을 오늘 본문과 연결시키면, 심지어 가룟 유다를 위해서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마치 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