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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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묵상70 - 오늘을 사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요한복음17:1~5)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시작하신 고별 설교가 16장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말씀을 마치시고 이제 제자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를 두고 신학자들은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당신의 역할에 관해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역할이라고 말이죠. 그를 위해 아버지께서 영광되게 하셨다고 말씀하죠. 이 영생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을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요한복음 3:16에도 나오는 단어죠. 그리고 그 영생이 무엇인지도 똑똑히 전해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요. 이런 생각을 해 보시죠. 직장인이 있어요. 그가 그 직장에서 가장 빛날 때는 언제일까요? 학..
2020.04.02 -
요한복음서묵상69 - 우리의 삶은 오늘 하루로 만들어집니다.(요한복음16:25~33)
비유로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의도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비유라고 표현된 헬라어는 ‘파로이미아’는 난해하거나 상징적인 말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알아듣지 못하도록 일부러 어려운 말을 쓰신 것처럼 생각되기 쉬운데요.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비유의 말씀을 하면 제자들은 그 의미가 뭔지 알아채려고 서로 수근 거리기도 했죠.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숨기거나 어렵게 말씀하시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이 들리지 않은 거죠. 가령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다림교육은 무료교육기관이죠. 교육적 불균형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세워진..
2020.04.01 -
요한복음서묵상68 - 믿는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요한복음16-24)
오늘 본문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짧은 시각이 아닌 넓은 시각을 요구하시죠. 내 앞에 놓인 문제, 내 판단에 의한 상황 파악에 집중하기보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손길의 계획 속에서 나의 길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이라고요.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기에, 나의 생각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신다는 믿음이 그 길을 가능케 하는 것이죠. 이를 두고 산고의 고통 앞에 놓인 여인과 비교하며 말씀하십니다. 비록 고통 앞에서 두려워하나 출산의 기쁨을 알기에 누구도 피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또한 출산의 기쁨이 산고의 고통을 덮는 것이라고 말이죠.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맛난 먹을 것이 놓여있는 앞에서 손을 씻고 와야 하는 시간..
2020.03.31 -
요한복음서묵상67 - 이제 ‘너희 손으로 일하라’(요한복음16:5~15)
오늘 본문은 성령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시는 역할을 우리에게 하신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세상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길을 가는지, 얼마나 거짓된 주장에 현혹되어 있는지 이전에는 몰랐어요. 나도 따라서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깨우쳐 무엇이 옳은 길인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신다는 거죠. 의에 대해서는 이렇습니다. 세상에 의인이 없어요. 그리스도 이외 진리가 없습니다. 그분 같은 분이 이 세상에 없음을 알게 하신다는 거죠. 또한 아무리 권세가 강하고, 영원할 것 같아도 권불십년이고 화무십일홍임을 ..
2020.03.30 -
요한복음서묵상66 - 아는 길은 두렵지 않습니다.(요한복음16:1~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중요한 당부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앞서 하신 15장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지요. 앞으로 있을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일부러 말씀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시죠. 오늘 이 짧은 말씀을 묵상할 때 떠오른 인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에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기독교인을 핍박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사심으로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은 아니죠. 그 나름대로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한 행동입니다. 그는 기독교가 자신의 하나님 신앙을 저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행동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들이 하나님도 나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요. 이 말씀은..
2020.03.28 -
요한복음서묵상65- ‘서로 사랑’하는 존재 가치를 누리는 것이 성령 충만의 모습입니다.(요한복음15:18~27)
오늘 본문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왜 그리 힘든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 땅의 원리가 아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어느 한 공동체에서 누군가 다른 행동을 하면 어떨까요? 모두 다 일을 하는데 그 사람만 논다면 어떨까요? 이와 반대로, 모두 다 서로 미워하고 경계하고 짜증 내고하는데 어디 가도 웃고, 누구와도 잘 지내고, 다른 사람들이 따르고 한다면요? 이것은 단순한 질투심이 아닙니다.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있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협력함으로 얻어지는 결과물들을 만드는 힘이 집단지성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서로의 가치들을 모아 조율하고 협력하며 나를 뛰어넘는 새로운 창조를 이루는 것을 말하죠. 이것이 연대이고 연합이죠. 그런데 그와 다르게 집단최면도 있어요. 소위 ..
2020.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