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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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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묵상56 -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요한복음13:12~20)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주이며 선생이심을 스스로 확인하시죠. 저는 이 대목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신앙관은 신과 인간의 경계를 긋는 일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신을 부르짖고, 경배하고, 제사하는 방식에 모든 것을 걸죠. 이에는 샤머니즘이나 기독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여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예배와 경배, 기도와 찬양이 그저 그 행위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요. 그것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이는 마치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신 ..
요한복음서묵상55 - 잘 받을 줄 알아야 잘 줄 줄도 압니다.(요한복음13:6~11) 예수님께서 팔을 걷어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하자 베드로가 크게 당황을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싸고 말립니다. 당연하죠. 이는 선생이 제자에게 할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선생에게, 종이 주인에게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베드로의 반응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죠. 그렇게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논쟁(?)이 붙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행동이 베드로와의 특별한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러자 이번에는 베드로가 돌변하여 발이 아니라 몸을 다 씻어 달라고 말합니다. 정말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이 본문의 주제를 정한다면 아마도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요한복음서묵상54 -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한다.(요한복음13:1~11)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 발을 씻기는 일이 당시에 존재했습니다. 주로 샌들을 신고 다녔던 유대인들은 발이 더러워지기 쉬웠죠.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발부터 씻었던 모양입니다. 손님들이 초대되어 오면 그들에게 먼저 발을 씻을 물을 내어 주는 것이 예의였죠. 그런데 이때 발을 씻기는 일은 주로 종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신분이 낮은 이들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이죠. 그날은 만찬의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작정을 하셨던 모양이에요. 뜬금없이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많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까요? 우리는 보통 그냥 ..
요한복음서묵상53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되기 위한 시작입니다.(요한복음12:44~50)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작용을 하시는 분인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를 설명하시죠. 그러시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빛으로 오신 목적도 밝히시죠. 우리를 어둠 속에 머무르게 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라고요. 이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조난을 당했다고 가정해 보죠.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나침판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조그마한 빛이 보여요.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이 그 빛이시라는 것이죠. 이어지는 말씀은 ‘나는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
요한복음서묵상52 -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를 볼 줄 알아야 아버지의 마음을 압니다.(요한복음12:37~43) 요한복음 저자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예수를 믿지 않는 우리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전해도 믿지 않는 이들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이 성경의 예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까지 하며 이런 현상을 강조하죠. 예언까지 인용하며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하나님이 바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눈에 보여줘도, 아무리 손에 잡아줘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는 뜻을 강조하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이 간혹 떠오르곤 합니다. 왠진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어렴풋한 기억들이 떠올라요. 사실 저와 아버지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늦둥이인 데다가 아버지는 많이 ..
요한복음서묵상51 -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그 밖의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요한복음12:27~36) 은성 전도사님을 위해 기도하기로 한 6개월이 보이지 않으나 기적이 일어나는 기간이기를 빕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빕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위한 기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도 위로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터전이 본격적으로 준비됩니다. 여러 사람들이 협력할 때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 넘치길 기도합니다. 오늘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모이지 못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어려운 시기 잘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고난을 앞두고 마음이 착잡하셨던 것 같아요. 이는 겟세마네의 기도를 연상시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고난의 가시밭 길을 앞두고, 죽음을..
요한복음서묵상50 - 삶의 의미는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패배하는 데 있습니다.(요한복음12:20~26) 오늘 예수님은 진리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밀알이 땅에서 죽어야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된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밀알이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해서 끝까지 살아있다면 그 밀알은 나무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어쩌면, 작은 나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도구로 나를 드리는 삶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원래부터 작은 우리가 죽고 큰 하나님이 사는 인생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사도 바울도 이 진리를 더욱 확장시켜 선포했는데요. 고린도전서의 말씀입니다. 고전 15:42~44,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
요한복음서묵상49 - 신앙은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위한 것이 아닙니다.(요한복음12:9~19) 나사로 사건을 통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반감은 극에 달았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계획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런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리 분노했을까요? 신성모독이요? 잘못된 가르침이요? 그보다 어쩌면 자신들의 밥그릇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질투죠. 우리는 경쟁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가는 존재들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하셨죠? 그것은 우리가 서로 먼저 가려고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보듬으며 어깨동무하고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하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본모습입니다. 거기에 비교, 질투, 시기, 상대적 박탈감이 끼면 우리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일그러집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라 말씀하심에는 우리가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