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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요한복음서묵상77 - 모든 것이 나와 상관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18:33~40)

이제 본격적인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대화가 아니라 심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행스럽게도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이 대화의 내용을 요한복음은 상세히 기록하고 있네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아예 예수님께서 묵비권을 행사하시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죠. 아무튼 이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지배자인 빌라도와 피지배자인 예수, 반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와 그를 바라보는 죄인 빌라도. 어떤 시각, 어떤 믿음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마주합니다. 그래서 이 대화는 흥미롭습니다.

심문인 관계로 빌라도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의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질문을 잘 보세요. 질문이 조금씩 변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에 국한해서 질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기껏해야 식민지 땅에서나 조금 영향이 있는 그런 사람으로 취급을 하죠. 어쩌면 이런 질문의 숨은 의도는 조롱일지도 모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쳐다보듯 하는 태도의 질문이니까요. 아마도 빌라도에게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그에게 예수는 ‘듣보잡’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고 그는 두 번째 질문을 하죠.

‘그래서 네가 왕이냐?’

이 질문에는 유대라는 국한된 지명이 빠졌네요? 조금 전 나와 상관없는 유대의 왕이라고 보던 시각이 이제는 자신을 포함한 왕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셨는지, 요한복음에 서술된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다’라고만 하시니까요. 그런데 빌라도는 예수님의 단순한 말에 자신의 질문이 달라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공관복음서에서는 심지어 예수님께서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향기라고 할까요? 아니면 카리스마라고 할까요?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당당하고 겸허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숙연해지고 신뢰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는 자신과 관계없는 예수에서 자신과 연결된 예수로 질문이 변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마지막 질문으로 이어져요.

‘진리가 무엇이냐?’

나와 관계없는 예수에서 나를 포함한 예수로, 그리고 이제 진리까지, 빌라도는 점점 예수님의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는 모습처럼 보이네요. 이는 신앙생활의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나와 상관없는 예수에서 나의 선생이신 예수로, 그리고 나의 길이 되시는 예수가 되는 과정, 그 과정을 이 짧은 대화에서 빌라도가 보여줍니다.

어제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6주기였습니다.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유가족들이죠. '부모가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죠. 어찌 그들이 이 기억을 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의 아픔을 두고 막말을 쏟아냅니다. 돈이 어쩌니, 세월이 어쩌니, 쉽게 이야기하죠. 왜 그럴까요?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없다면 같은 마음을 품을 수도,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품으라고 요청하는 것은, 그 일이 나와 상관있음을 알라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내 가족이 나와 상관있듯이, 내가 사는 이 사회, 내가 일하는 이 지역, 이 직장, 이 동료와 이웃, 이 모든 것이 나와 상관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나와 상관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 때, 우리는 그 상황과 일들 가운데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나에게 주신 일임을 알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 나의 일이고,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이웃 또한 나의 사랑이 되고요. 하나님이 꿈꾸시는 미래가 나의 미래가 됩니다. 하나님과 내가 상관있으니까요. 거기서 진리가 드러납니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 내 이웃, 내 주변의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나와 상관있는 일임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깊은 관심과 기도로 함께 하셔요. 그때 우리 안에 진리의 영이 살아나고, 은혜의 강물이 흐릅니다. 은혜의 샘물은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수도꼭지를 열듯 뿌려야 그 은혜가 흐르죠. 오늘도 나와 상관있는 일들이 넓기를 바랍니다. 그 넓은 들에 은혜를 뿌리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은혜가 우리에게 흐르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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