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5. 06:41ㆍ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오늘 본문은 장면이 바뀌어 이야기는 대제사장 집 앞에서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수님은 잡히셔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당하고, 제자 베드로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죠. 베드로는 역시 수제자였습니다. 스승인 예수께서 사형에 처해질 만큼의 죄목으로 붙잡혀갔다면 제자들도 위험한 상황일 텐데요. 그는 예수님을 끝까지 보려고 소위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말이죠. 한번 정도라면 실수라고 여겨줄 만 하지만 세 번이면 자신의 의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사건은 유명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다른 복음서와는 조금 다른 서술 형태를 띠죠. 그것은 예수님의 심문 장면과 베드로의 부인 사건을 교차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의 기술 의도가 나타나는데요. 지금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베드로를 비교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떤 비교일까요? 아마도 대제사장 앞에서 힘없이 끌려온 예수님이지만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과, 일면 자신 스스로를 부인하며 초라하게 모닥불 앞에서 몸을 떨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물론 예수님과 베드로의 비교는 무리입니다. 전 인격적으로 전혀 다른 분들이니까요.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비교는 어쩌면 우리에게 다른 메시지를 전해줄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은 어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 자신을 맡긴 예수님과 그렇지 못한 베드로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살고 죽음을 하나님께 맡긴 삶과 어떻게는 살아보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삶의 차이 말입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나를 나보다도 더 잘 아시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그분을 맡는 믿음과, 눈앞에 놓인 어려움 앞에 불안과 두려움으로 잔머리를 굴리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 말입니다.
우리 삶의 결과는 믿음의 차이로 드러납니다. 내 삶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믿는 믿음으로 걷는 자의 길은 남다릅니다. 실수 앞에서도,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나의 아버지가 누구시며, 나의 창조주가 누구신지를 아는 자의 미래는 다르죠. 여전히 기회를 주시고, 사막에도 길을 여시는 그분을 믿는 자는 절망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도우시고 이끄시는 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겠죠. 십자가가 두렵지 않은 것은 십자가의 형벌이 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뭘 모르거나 어떤 의지가 강해서도 아니죠.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를 아시고, 그분이 나를 잊지 않으시며, 그분이 나의 목자이심을 아는 믿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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