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92 - 조금만 더 유머러스하게 사세요.
2026. 5. 14.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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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2b~4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 보게 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가면서, 이방 사람들이 회개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의 모든 신도들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일들을 모두 보고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간밤 평안히 주무셨는지요.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아침 인사는 우리에게 작은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밝고 경쾌한 마음으로 열어가는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은 AD 49년경 있었던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공식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초의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을 다룬 회의였죠. 그 출발은 안디옥 교회 안에 생긴 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에서 내려온 몇몇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신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도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유대주의적인 사고였어요.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낡은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이방 땅 한복판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로서는 이 문제가 아주 실제적인 문제였을 거예요. 안디옥 교회에는 이방인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과 이방인 포용은 안디옥 교회의 중요한 신앙적 색깔이었습니다. 이미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여행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너희도 유대인처럼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들어온 것입니다.
당연히 논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 장로들과 함께 의논하기로 하죠. 여기서 특별한 점은, 회의를 예루살렘 교회가 먼저 소집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교회처럼 영향력을 가진 예루살렘이 위에서 명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디옥 교회가 문제를 가지고 제안했다는 점이죠. 위에서 찍어내리는 방식이 아닌, 아래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 해결은 참 건강한 모습입니다. 어쩌면 초대교회의 매우 민주적인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며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편안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큰 분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릴 정도였으니 작은 문제가 아니었겠죠. 교회의 정체성과 복음의 본질을 흔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의 기록을 읽다 보면, 안디옥 교회가 크게 당황하거나 무너진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문제를 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폭발하지도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공론화합니다. 그리고 대표단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한 대표단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방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온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모든 형제자매들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 장면이 참 여유로워 보입니다. 분쟁의 중심으로 가는 길인데, 마치 은혜 간증회를 열며 순회공연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러 가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복음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위기를 통과하는 방식이 참 멋집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이 들른 곳이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라는 점입니다. 페니키아는 지금의 레바논과 시리아 지역으로 전형적인 이방 지역입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극도로 꺼리던 땅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방보다 더 불편한 이웃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온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치 몸으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유대인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복음은 경계를 넘어 흐릅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말로만 차별 없는 사랑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걷는 길 자체로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중요한 영적 태도를 한가지 배웁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보지 않는 태도죠. 우리 삶에는 계속 문제가 생깁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생깁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갑자기 앞에 놓입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굳어집니다. 얼굴이 굳고, 마음이 굳고, 생각이 굳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더 커 보입니다. 작은 말도 크게 들리고,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막다른 길처럼 느껴지죠.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여유입니다. 조금의 유머입니다. 유머는 문제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실을 외면한다는 뜻도 아니예요. 유머는 절망과 분노의 김을 빼는 능력입니다. 문제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믿음의 숨구멍이죠.
“그래, 이것도 지나가겠지.”
“주님이 또 길을 내시겠지.”
“이 문제도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겠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힘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문제 앞에서도 내가 완전히 문제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문제 한가운데에서도 이미 그 좋은 길 위에 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유연해집니다. 덜 날카로워집니다. 상대를 적으로만 보지 않게 됩니다. 대화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웃으며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경직되면 생각도 경직됩니다. 감정이 메마르고 분노가 가득할 때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의 결정은 대개 사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두려움이나 분노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해결보다 상처가 커집니다. 우리의 결정은 부드러운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유연한 감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죠. 주님을 신뢰하는 평안 안에서 내려져야 합니다.
조금만 더 유머러스하게 살면 어떨까요? 문제 앞에서 당황하지 말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십시오. 그 미소가 문제를 없애지는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문제에 끌려가지 않도록 지켜 줄 것입니다.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만 믿음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복음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두려움의 사람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자유와 기쁨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혹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까? 만나기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까? 결정해야 할 일이 있나요? 먼저 마음의 숨을 고르십시오. 주님 앞에서 분노의 열기를 조금 식히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얼굴에 미소를 띄세요. 가볍게 웃으며 말해 보십시오.
“주님, 이것도 주님 안에서는 길이 되겠지요.”
그 고백이 오늘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것입니다. 조금 더 유머 있게, 조금 더 웃으며, 조금 더 여유 있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z2JKpMKikm8?si=rnof8L-OBaOh7c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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