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88 -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2026. 5. 10. 13: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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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4:21~22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복된 주일 아침입니다. 한 주의 시작을 예배로 여는 것은 참 귀한 은혜입니다. 시작이 좋아야 합니다. 첫 마음이 바르면 길이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마음을 모으고 예배로 한 주를 시작할 때, 우리의 삶에도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싱그러운 5월의 햇살처럼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을 비추고, 지친 영혼에는 위로가, 흔들리는 걸음에는 다시 걸을 힘이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었습니다. 이제 선교 여행의 막바지입니다. 고향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길이 이상합니다.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이 도시들은 어떤 곳입니까?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은 바울 일행이 쫓겨났던 곳입니다. 루스드라는 더 심했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던 곳이죠.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곳은 바울에게 상처의 자리이자 두려움의 자리였습니다. 죽음의 기억이 남아 있는 자리였죠. 그런데 바울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합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피하고, 위험한 장소를 피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거룩한 배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믿음은 문제 없는 온실로 숨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피투성이 현실을 직시하는 힘입니다. 두려움의 한복판을 다시 지나가는 능력이에요.

바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에 아직 어린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당하면 어떻게 하나.” 
“이 믿음을 계속 지킬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돌아갔습니다. 자기 상처보다 제자들의 믿음을 먼저 보았습니다. 자기 안전보다 공동체의 회복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 주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환난은 기도를 덜 해서 받는 벌이 아닙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당하는 징계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려고 할 때 생기는 필연적인 마찰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먼 나라만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기심과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 한가운데 세워지는 사랑과 평등의 질서입니다. 그러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편법을 말하는데 우리는 정직을 말합니다. 세상은 이익을 말하는데 우리는 사랑을 말합니다. 세상은 미운 사람을 밀어내라 하지만 우리는 환대하려 합니다. 그때 마찰이 생깁니다. 그것이 환난입니다.

마찰이 없으면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타이어와 지면 사이에 마찰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덜컹거림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딪힘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살다가 손해를 보셨습니까? 사랑하려 했는데 오해를 받으셨습니까? 편법을 거절했다가 밀려난 것 같습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때문에 생기는 마찰이에요.

상처와 굳은살은 다릅니다. 똑같은 고난을 겪어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원망만 붙들면 고난은 상처가 되고, 평생 덧나는 가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고난을 성찰하면 굳은살이 되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손끝을 보십시오. 수많은 마찰 끝에 굳은살이 생깁니다. 그 굳은살이 더 깊은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렇습니다. 마찰을 주님 안에서 견디면, 그 아픔은 언젠가 더 깊은 사랑의 소리가 됩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치 있는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근육도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운동으로 미세한 상처를 입고 회복되면서 더 단단해집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고통만 있으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고통에 성찰이 더해지면 성장합니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 영혼에 어떤 굳은살을 만들고 계십니까?” 

이렇게 묻는 순간, 고난은 단순한 아픔을 넘어 성장통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 어떤 마찰이 있습니까?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상처의 자리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때로 우리를 그 자리로 다시 보내실 때가 있습니다. 무너지라고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굳세게 하라고 보내십니다. 내 상처가 누군가의 위로가 되게 하시려고 보내십니다. 내 굳은살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려고 보내십니다.

장애물이 길을 막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장애물이 길이 될 때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루스드라의 돌팔매질은 사역을 끝내는 장애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뚫고 다시 돌아간 발걸음은 제자들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거룩한 배짱을 품으십시오. 상처를 상처로만 남기지 마십시오. 그것을 굳은살로 바꾸십시오. 마찰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마찰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랍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주님의 은혜 안에서 버려지는 고난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이 딛고 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영적 개척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DNWIWbfj5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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