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93 - 열려야 흐르고, 흘러야 삽니다.

2026. 5. 15.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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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5~11   그런데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신도가 된 사람 몇이 일어나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모였다. 많은 논쟁을 한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 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성장시켜 준 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도 계시고, 부모님도 계시고, 때로는 친구와 이웃도 스승이 됩니다. 심지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도 돌아보면 나를 깨우는 스승이 되곤 하죠. 그 모든 만남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매일 아침 묵상하며, 내 생각과 고집을 말씀 앞에 복종시키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드디어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회의가 왜 열렸는지를 다시 설명해 줍니다.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몇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방 사람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여야 합니다.” 

안디옥에 와서 사람들을 흔들었던 이들과 같은 주장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유대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았지만, 복음을 자기들의 오래된 틀 안에 가두려 한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관습과 고정관념을 붙들고 살죠. 말씀을 듣는다 하면서도 말씀으로 나를 바꾸기보다, 내 생각으로 말씀을 재단할 때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듭남은 몸의 변화만이 아닙니다. 생각의 변화이고, 시선의 변화입니다. 이전의 나를 내려놓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죠.

그렇게 논쟁이 한창일 때 베드로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주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셨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않으셨다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처럼, 그들도 같은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선포하죠. 구원은 혈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습의 문제도, 내가 쌓은 공로의 문제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이 말을 한 사람이 베드로라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베드로는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과 함께 식탁에 앉는 것조차 눈치를 보던 사람이었죠. 유대주의적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말합니다. 하나님에게는 그 누구도 차별이 없다고 말이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같은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복음이 그의 담장을 무너뜨렸다는 증거죠.

예루살렘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복음이 유대인의 작은 울타리를 넘어 모든 인류를 향해 열리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닫힌 종교에서 열린 복음으로 나아가는 순간입니다. “우리만”의 신앙에서 “모두를 위한” 은혜로 확장되는 순간이죠. 

생명은 닫힌 곳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물은 흘러야 맑아집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나만 옳다고 붙들면 고립됩니다. 내 것만 지키려 하면 오히려 좁아지죠. 그러나 마음을 열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더 넓어집니다. 새로운 생각과 환경을 만나면 우리는 성장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내 생각 안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죠.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님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품 안에만 가둬 두면 안전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만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생각을 배우고, 넘어지고 일어나며 성장해야 합니다. 사랑은 가두는 것이 아닙니다.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나만”, “내 것만”, “내 자식만”, “내 기득권만”을 외칩니다. 그래야 내가 잘될 줄 알죠. 그래야 잃지 않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정반대입니다. 나를 넘어 너와 연결될 때 더 풍성해집니다. 우리를 넘어 모두에게 열릴 때 더 단단해지죠. 쓰고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어집니다. 빌려주고 흘려보내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입니다.

오늘 우리 안의 담장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할례는 무엇입니까? 내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지금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방식만 옳다고 여기며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는 않나요? 닫힌 곳에는 자람이 없습니다. 고립된 자리에는 밝음이 없습니다. 열려야 합니다. 위험해 보여도 열려야 합니다. 두려워도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그 열린 자리에서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의 문만은 결코 닫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열어두십시오. 그렇게 낯설고 익숙치 않은 생각들을 들어 보세요. 어느덧 부쩍 자라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내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밖으로 나가 보세요. 그렇게 나의 영이 열려야 흐르고, 흘러야 삽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열려야 은혜가 들어오고 그래야 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의 낡은 담장을 허무시고, 더 넓고 깊은 사랑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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