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91 - 내 담장을 깨뜨릴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2026. 5. 13.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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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1~2a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신도들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해 뜨는 시간이 부쩍 빨라졌습니다. 새벽이 예전보다 훨씬 환하죠.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그 비가 지나간 뒤의 새벽 하늘이 참 맑고 아름답습니다. 씻긴 하늘처럼 마음도 맑아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쌓인 무거운 생각과 오래된 편견도 주님의 은혜로 씻겨 나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비 갠 하늘처럼 화창한 마음으로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사도행전 15장 묵상을 시작합니다. 15장은 유대에서 내려온 몇몇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신도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유대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초대교회의 모교회와 같은 위치에 있었죠. 그러니 안디옥 교회에도 당연히 영향력이 있었을 테죠.
문제는 그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통 유대주의적 사고였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대적 사고가 깊이 남아 있었던 거죠. 5절에 가면 이들의 정체가 더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신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대주의적 사고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이들은 복음을 믿었지만, 복음을 자기들의 오래된 틀 안에 가두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는데도, 그들은 다시 담장을 세우려 했습니다.
"우리처럼 되어야 너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복음은 길을 열었는데, 그들은 다시 문턱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받아들이셨는데, 사람은 조건을 붙이죠.
성서학자 E. P. 샌더스나 N. T. 라이트 같은 이들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할례, 안식일 준수, 음식법 등을 '경계 표지(Boundary Markers)'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표시입니다.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을 나누는 울타리인 것이죠. 안쪽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바깥쪽에 있는 사람은 배제된 사람이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그 담장을 허무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인이든 죄인이든 모든 생명을 사랑하셨어요. 누구든지 은혜로 주님께 나아오도록 새롭고 산 길을 여셨습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게 됩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인 회의였습니다. 또한 최초의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을 다룬 자리였죠. 복음이 유대인의 울타리 안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모든 민족에게 열린 은혜가 될 것인가를 다루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내일 다시한번 다루기로 하죠. 다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초대교회의 오래된 논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현대판 할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도 경계 표지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특정한 교리를 기준으로 사람을 가릅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적 성향으로 사람을 나누고, 또 어떤 사람은 도덕적 잣대로 정죄를 일삼죠. 어떤 사람은 성격, 경제적 형편, 학력, 출신, 타종교 여부, 심지어 성적 지향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우리는 늘 내 기준으로 누군가를 안쪽과 바깥쪽으로 나누죠.
그러나 영적인 개척은 하나님이 허무신 장벽을 다시 세우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종교적 열심이 늘 사랑은 아닙니다. 때로는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담장을 더 높이 쌓습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밀어냅니다. 거룩을 말하면서 환대를 잃어버려요.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은 내가 세운 담장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받아들이신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내는 넓은 환대입니다.
이웃 사랑은 감정이나 동정이 아닙니다. 단지 마음이 짠해서 잠시 도와주는 것도 아니죠. 이웃 사랑은 내 안의 담장을 허무는 일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예요. 내 기준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실 수 있음을 믿는 일이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나의 도덕적 기준으로 이웃을 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신앙적 편견으로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종교인이라고 쉽게 정죄하지는 않았나요? 나와 결이 다르다고 편을 가르지는 않았습니까? 혹시 내 안에 "우리"와 "너희"를 나누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은 닫힌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인간이 만든 경계보다 크십니다. 초대교회는 이방 세계를 만나며 복음의 넓이를 새롭게 배워야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급진적인 포용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 사람을 내가 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성령 안에서 배워야 합니다. 나만의 성을 부수어야 합니다. 나만의 우물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내 안의 담장을 깨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담장이 높으면 안전해 보이지만, 결국 사랑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담장이 무너지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복음이 흐릅니다.
오늘 하루, 마음속 담장 하나를 살펴보십시오. 내가 쉽게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향해 작은 기도 하나를 드려 보십시오.
"주님, 제가 세운 담장을 허물어 주십시오.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저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그 기도가 오늘 우리의 믿음을 더 넓게 만들 것입니다. 내 담장을 깨뜨릴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더 깊고 넓게 흐를 것입니다.
https://youtu.be/SBHXJFgmjTU?si=XdjxY_dgJ0ub4N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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