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81 - 내게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으세요.

2026. 5. 1.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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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9~52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노동절입니다. 이 땅의 모든 직업과 노동은 귀합니다. 누군가는 노동은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참 깊은 말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자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손길도, 책상 앞에서 애쓰는 시간도, 땀 흘려 몸으로 감당하는 일도 모두 귀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쉼 가운데 영혼이 회복되고, 우리의 일터와 삶의 자리가 다시 거룩한 부르심으로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수고한 모든 분을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지친 몸과 마음에 깊은 안식을 주시기를 빕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내 뜻과 다르게 오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 왜곡되기도 합니다. 선의로 건넨 손이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비난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에 억울함이 쌓입니다. 분노도 생깁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왜 내 마음은 몰라줄까.” 이런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과 바나바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혼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환대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지역에서 쫓겨났습니다. 참 억울한 일입니다. 사랑했는데 밀려났습니다. 살리고 싶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했는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전합니다. 쫓겨난 사람들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니요. 실패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성령으로 충만했다니요.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세상은 그들을 밀어냈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절했지만, 그들의 영혼에서 기쁨을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과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랑은 결과가 좋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했기에 좋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도 그렇습니다. 아이가 늘 좋은 성적을 내고, 고맙다고 말해야만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아이이기에 사랑합니다. 반응이 부족해도 사랑하고, 때로는 속상해도 사랑합니다. 사랑은 계산보다 깊습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는 듣는 이들의 몫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랑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자유입니다.

오래전 학생 시절에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목회하시던 한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하루 종일 심방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일에 치인 뒤 집으로 돌아오시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집 문 앞에 잠시 서서 기도하셨답니다. 

“주님, 오늘 밖에서 묻혀 온 마음의 먼지들을 이 문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픔의 먼지, 슬픔의 먼지, 억울함의 먼지, 분노의 먼지를 여기서 떨어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옷의 먼지를 탁탁 털고 밝은 얼굴로 표정을 바꾸고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고 살아 보니, 그 기도가 얼마나 깊은 지혜인지 알겠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받은 상처를 마음에 그대로 묻힌 채 집으로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의 비난을 품고 옵니다. 억울한 일을 안고 옵니다. 풀리지 않은 분노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먼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떨어버립니다. 밖에서 묻은 먼지인데, 집 안에서 날립니다. 남에게 받은 상처인데, 가족에게 쏟아냅니다. 그러면 내 마음도 더러워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다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도시를 떠나며 발의 먼지를 떨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주신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영접하지 않는 곳에서는 떠날 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영적 단절입니다. 세상이 주는 거절감과 비난과 억울함을 내 영혼에 계속 묻히고 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으니, 이제 그 무게는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믿음입니다.

떨어내는 것도 능력입니다. 붙들고 있는 것이 깊은 것이 아닙니다. 오래 아파하는 것이 진실한 것도 아닙니다. 어떤 상처는 단호하게 떨어내야 합니다. 어떤 말은 내 안에 오래 머물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억울함은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의 먼지를 옮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가벼워집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먼지가 묻어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받은 말 한마디입니까?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입니까? 혹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분노입니까? 오늘 주님 앞에서 그 먼지를 떨어내십시오. 손으로 옷을 떨듯, 마음으로도 떨어내십시오.

“주님, 이것을 더 이상 내 영혼에 묻히고 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환경은 우리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우리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기쁨까지 빼앗기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은 상황보다 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는 사람들의 평가보다 큽니다. 오늘 모든 묵은 먼지를 떨어내십시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걸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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