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79 -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2026. 4. 29.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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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6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먼저 전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 판정하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밤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여러분의 마음에는 기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짜증이 아니길 바래요. 혹시 힘들게 일어나 해야 할 일 때문에 투정이 올라온다면 이런 마음을 되새기시길 빕니다. '나에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기쁘다'고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아도 내게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 시간과 여건은 다 복입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를 보내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먼저’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식당에서도 먼저 줄을 서면 마음이 놓입니다. 병원에서도 먼저 접수하면 안심이 되고요. 먼저 자리를 잡고, 먼저 기회를 얻는 일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신앙에서도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먼저 복음을 들었고, 먼저 교회 안에서 믿음의 길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분명 큰 축복입니다. 먼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특권이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먼저 부르셨습니다. 먼저 말씀을 맡기셨고,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먼저 전해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먼저 말씀하셨고, 먼저 은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먼저 된 이유를 잊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렀죠. 권리는 붙들었지만 의무는 외면했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누리는 자리만이 아닙니다.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먼저 받은 사람은 먼저 나누어야 합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은 먼저 섬겨야 합니다. 먼저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도 흐르도록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잊었습니다. 선민의식에 갇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만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을 품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멸시했습니다. 복음을 흘려보내야 할 자리에서 움켜쥐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어 주신 참된 복음마저 시기심으로 거절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기득권을 더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방향 전환이 아닙니다. 촛대가 옮겨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맡기신 은혜의 자리를 스스로 닫아 버린 이들에게서, 그 은혜의 통로가 다른 이들에게로 옮겨지는 장면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비극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가장 멀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들었지만 가장 늦게 깨달았습니다. 가장 많이 맡았지만 가장 적게 나누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엄중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먼저 십자가의 은혜를 들었습니다. 먼저 주님의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장자의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용서가 필요한 곳에서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이 메마른 곳에서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절망이 깊은 곳에서 먼저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변해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괜찮다.”
“나는 오래 믿었으니 됐다.”
“나는 직분이 있으니 충분하다.”

이렇게 영적인 권리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오히려 남들을 비난하고 조롱하지는 않았습니까?

“예수 안 믿더니 꼴 좋다.”
“교회 안 나가면 망하는 거야”
“저것들 다 죄인들이야!”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에는 게으르지 않습니까? 믿음의 연수는 길어졌지만 사랑은 좁아지고,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삶은 덜 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인 물은 썩습니다. 흘려보내지 않는 은혜는 말라갑니다. 은혜는 쌓아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붙들고 있으면 작아집니다. 반대로 흘려보내면 커집니다. 주님께서 내게 은혜를 먼저 주신 이유는 나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통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받은 위로가 누군가의 위로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용서가 누군가의 회복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일이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은혜의 통로로 부름받았지만 스스로 문을 닫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익숙함에 속지 마십시오. 오래 믿었다는 사실이 믿음의 깊이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먼저 알았다는 사실이 끝까지 앞서간다는 보증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그 은혜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먼저 사랑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손 내미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가정에서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 보십시오. 직장에서 먼저 이해해 보십시오.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먼저 덮어 주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십시오. 작은 일이라도 괜찮습니다. 은혜는 작은 통로를 통해서도 흐릅니다. 먼저 된 자의 축복은 먼저 섬길 때 지켜집니다. 먼저 받은 은혜는 먼저 나눌 때 더 깊어집니다. 오늘도 먼저 받은 은혜를 아름답게 유통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https://youtu.be/8z52Oy8Jh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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