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74 - 우리의 사랑은 법보다 강합니다.

2026. 4. 23.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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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8~39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 바로 이 예수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죄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루하고 피 말리는 줄다리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죠. 오늘은 이 땅에 더 이상 무자비한 폭력과 힘의 논리가 자행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언제 포탄이 떨어질까 공포에 질려 떠는 이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여파로 생사의 기로에 서는 안타까운 생명들이 더는 없기를 함께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설교의 궁극적인 결론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율법의 한계를 명확히 짚은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은 죄를 깨닫게 할 뿐입니다. 죄의 무거운 사슬을 끊어낼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선언하죠.

이것을 가리켜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합니다. 믿음으로써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훗날 바울은 로마서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굳게 믿음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강하게 부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개혁 전통을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가 되었죠.

그런데 이 말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의미가 단번에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교리는 조금 더 보완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중요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감리교인으로서 웨슬리의 이 깊은 주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웨슬리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로움에 이른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는 이신칭의만 말하고 그 이후 삶의 변화가 전혀 없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복음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참된 믿음이라면 반드시 삶의 뚜렷한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거죠. 거룩함과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웨슬리의 주장을 근거로 오늘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은 법보다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못 붙잡으면 아주 위험해집니다. 내 착한 행실을 정량화하고 도덕적 우월감을 수치화하게 되기 때문이죠. "나는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저 사람보다 훨씬 나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얄팍한 도덕적 비교 도구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모든 국가와 모든 공동체에는 법이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의 관계 속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의 유무와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법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법치국가'라는 말은 마치 법이 옳은 것을 무조건 옳게 만드는 만능키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 가진 모순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압니다. 법이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그것이 힘 있는 누군가의 손에서 얼마나 마음대로 폭력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도 아픈 역사를 통해 똑똑히 배웁니다.

진리는 법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그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법이 옳은 것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사람이 옳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차가운 율법보다 따뜻한 사랑을 그토록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인간이 법보다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한 양심이 법보다 더 중요하고, 우리의 진실한 사랑이 법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양심과 그 사랑이 바르게 성숙하지 않으면, 법은 그저 힘을 가진 자의 전리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가장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거룩하게 성화되기를 간절히 꿈꾸기 때문입니다. 인간 세상의 질서를 진정으로 지탱하는 것은 굳은 법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닮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법대로 하지 마세요. 사랑대로 하세요. 법을 키우지 마세요. 선한 양심을 키우세요. 그렇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자라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https://youtu.be/XHOWwJSpK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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