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59 - 내가 꼭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2026. 4. 6.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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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3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활절을 지난 첫날 월요일 아침입니다. 어제 나눈 말씀처럼 여전히 나를 어둡게 만들고 절망의 그늘이 드리우는 현실 앞에서, 어두운 방안에 촛불을 밝히듯 생기와 희망으로 채우는 부활의 향기가 오늘부터 우리 가운데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어둠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빛 앞에서 사라지죠. 오늘도 그 빛이 부활의 증인임을 믿으며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13절은 아주 짧은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정말 많은 영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며칠 동안 여러 가지 깊은 묵상을 나누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띄는 특별한 지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읽으며 혹시 어떤 커다란 변화를 감지하셨습니까? 전도 여행을 시작한 이래, 성경은 줄곧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이름의 순서를 굳게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르러 갑자기 '바울과 그 일행'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크고 놀라운 변화입니다. 바로 리더십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 전도 여행을 이끌던 리더는 바나바였습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였죠. 핍박자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더 나아가 위대한 사도로 이끌어 준 영적 은인도 바나바였고, 이 전도 여행의 판을 처음 마련한 사람도 역시 바나바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위치가 완전히 역전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에 어떤 분란이나 소위 쿠데타 같은 시끄러운 사건이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리더십의 교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추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교체를 주도한 주체가 다름 아닌 '바나바'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기존의 리더가 스스로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서는 이토록 자연스럽고 조용한 교체가 결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나바는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아마도 바나바는 바울을 곁에서 지켜보며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바울의 삶 속에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명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바나바가 처음 바울을 기독교인들에게 소개하고 사역의 길을 터주었던 이유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바울을 예뻐하거나 특별한 연이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직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영적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과거 아나니아가 눈먼 바울을 찾아가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해 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을 온전히 믿고 신뢰해서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었기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내 감정이나 판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우리의 좁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크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바로 이 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깊은 은혜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늘 주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주님의 시선이 향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높은 자리가 곧 리더십인 줄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면 권력을 휘두르려 하죠. 하지만 영적 리더십은 계급이나 자리가 아니라, 오직 '사명'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진정한 리더였습니다. 그는 훌륭하게 다리를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맡기신 사명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그를 든든히 세우고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바울을 통해 일하실 주님을 굳게 믿고 자신의 1인자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것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품어주고 세워주었던 후배가 자신을 제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바나바는 조금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꺼이 아름다운 조연으로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크시고 모든 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꼭 무대의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우리의 인생에는 주연도 없고 조연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이 귀한 자녀들일 뿐입니다. 다만 주님의 섭리에 맞는 자리에서, 주님의 계획하심에 알맞게 쓰임 받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합니다. "나는 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헛된 자존심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꺼이 누군가를 세워주고 조용히 뒤로 물러설 줄 아는 넉넉함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부엌 한 켠에 놓인 깨진 작은 질그릇도, 아주 작은 역할에 쓰임 받는 무명의 엑스트라도, 주님이 펼쳐가시는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 속에서는 모두가 다 찬란하게 빛나는 주인공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선 자리에서 사명을 따라 움직이며, 기꺼이 누군가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는 진정한 리더십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B3TJYT6Ls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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