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63 - 오늘도 주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사세요.

2026. 4. 10.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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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6   그래서 바울은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간을 마무리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끝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죠? 이번 주를 잘 마무리하는 행복한 금요일 되시길 빕니다.

드디어 바울의 그 유명한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 설교'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오늘부터 펼쳐지는 본문은 바울의 회중 첫 설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장구한 역사, 즉 출애굽부터 사울 왕까지의 시간을 짧은 호흡으로 단숨에 요약하죠. 그렇게 청중의 마음을 열며 복음의 탄탄한 기초를 놓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역사 교과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요약 속에는 우리 삶을 뒤흔드는 아주 강력한 신앙의 인사이트와 적용점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설교를 따라가며 그 메시지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묵상하기 전에, 오늘은 약간 지엽적이지만 꼭 짚고 넘어갈 한 가지 포인트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본문 중 "바울은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말하였다"라는 부분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부분을 그냥 스쳐 지나가며 읽었습니다. 제가 평소 묵상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드렸죠? 일단 가볍게 본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전체적인 흐름이 잡힙니다. 사실 우리는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을 조금 귀찮아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선입견이라는 것이 참 강하게 작용합니다. 내가 그때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인지에 따라 글도 그렇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짙죠. 똑같은 글을 읽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문자나 이메일을 처음 쓱 읽었을 때와 나중에 다시 찬찬히 읽었을 때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문장이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 역시 본문을 그렇게 몇 번씩 읽다가 문득 눈에 확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울이 손을 흔들었다는 대목이었죠.

바울은 왜 굳이 손을 흔들었을까요? 그저 평범한 손 인사였을까요? 만약 단순한 인사치레였다면 누가가 굳이 이 행동을 세심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것이 있었는데요. 예전에 어디선가 배웠던 로마식 수사학이었습니다. '그레코-로만 수사학'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연설과 설득을 위한 고대의 가르침이죠. 그 기법 중에 '악티오(Actio)'라는 것이 있는데요. 행위나 행동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당시 로마의 지식인들은 손짓 하나, 표정 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도 연설의 중요한 일부이자 고도의 기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바울의 저 손동작이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의미가 꽉 찬 수사학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강한 영향권 아래 있는 지역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로마식 수사법을 사용한 것이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지킨 것일까요? 아무튼 바울은 낯선 이방인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주 세련되고 당당한 수사학적 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철저히 준비된 복음의 변증가임을 청중들 앞에서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바울의 뛰어난 학식이나 지적 능력만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제 마음에 깊이 다가온 생각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오랫동안 익숙했던 유대교 전통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복음을 들고 이 자리에 섰죠. 어쩌면 회당의 사람들은 그에게 뻔하고 익숙한 유대교적 설교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완전히 새로운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낯선 땅에서, 아주 낯선 설교를 시작하는 셈이죠. 당장 어떤 날 선 비난이 쏟아질지, 어떤 거센 도전이 몰려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너무나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것은 그저 바울의 타고난 성격 덕분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분명하고도 강력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고, 나를 사용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 서게 하셨다는 거룩한 확신이죠. 물론 바울이 죄가 전혀 없거나 무결점의 완전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 역시 연약하고 문제투성이인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나를 이 자리에 굳게 세우셨다는 사실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믿었습니다. 바로 그 절대적인 확신이 바울을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의 목숨과 맞바꾼 참으로 귀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낡은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내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모든 허물까지도 넉넉히 용서하십니다.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매 순간 우리와 동행하게 하시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살다가 좀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사역자로 부름받은 당당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얄팍한 시선에 지레 겁내지 마십시오.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거룩한 자신감을 품고, 오늘도 주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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