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66 - 광야는 사랑입니다.

2026. 4. 14.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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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8   광야에서는 사십 년 동안 그들에 대하여 참아 주시고,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새 초여름이 된 듯 기온이 올라가 있네요. 지난주 봄비를 기준으로 계절이 완전히 바뀐 듯합니다. 올해는 왠지 벚꽃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저만의 기분일까요? 교회 주변, 벚꽃이 날리는 탄천을 뛰다보면 기분도 좋아지는 것이, 마치 주님이 제게 주신 선물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도 선물같은 하루를 기쁘게 보내시길 빕니다.

먼저 본문을 한 절, 한 절 쪼개서 묵상하는 것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구절마다 세밀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깊이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짧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리기는, 시간 나실 때 바울의 설교 전체를 꼭 한 번 쭈욱 읽어보시면서 그 흐름 속에서 묵상을 나누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광야 이야기입니다. 어제 400년이 넘는 이집트 역사를 단 한 줄로 요약했던 바울은, 40년의 광야 생활 역시 '그들에 대하여 참아 주시고'라는 단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지난 주일 예배 때, 우리는 내 인생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문장의 성격과 인생의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는데요. 저는 오늘 본문의 이 문장에서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광야에 대한 아주 강한 고정관념이 깊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쉴 새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고, 우리의 눈물과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광야를 생각할 때 그 주어를 늘 '나'로 둡니다. 내가 아프고, 내가 힘들고, 내가 어렵고, 내가 고달프다고 말하죠. 그런데 오늘 바울은 그 문장의 주어를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광야는 '내'가 아프고 힘든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전적으로 돌보시는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참으셨다'는 표현은 곧 주님이 나를 '돌보셨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주어가 바뀌니 상황도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광야에서 그저 굶주리고 어려운 길만 걸었습니까? 천만에요. 광야는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땀 흘려 수고하지 않아도 매일 아침 하늘에서 먹을 만나가 떨어졌습니다. 내가 앞길을 이리저리 고민하지 않아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정확하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이미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그저 주님만 믿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완벽한 축복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했습니까? 틈만 나면 불평했습니다. 입만 열면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반역하기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광야가 이스라엘에게 눈물 나는 고난의 시간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말 안 듣고 반역하는 백성들의 그 끔찍한 소행을 40년 내내 묵묵히 참아내셨다고 뼈를 때리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나만 제일 힘들다고 말합니다. 왜 나만 하는 일마다 꼬이고 안 되느냐고 거칠게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럴 때마다 철저히 버림받고 고아가 된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 바로 그 시간, 내가 내 알량한 생각으로 함부로 판단하고 원망하는 그 믿음 없음을 주님이 묵묵히 참아주고 계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극정성으로 최선을 다해 자녀를 길러놓았더니, 다 커서 한다는 말이 고작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 준 게 대체 뭐가 있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부모는 그 모진 말을 꾹 참습니다.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그래, 내가 해 준 게 없지" 하고 묵묵히 넘어갑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험한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코 우리가 남들보다 성실하거나 믿음이 월등하게 좋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넘어질 때조차 주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 모진 원망을 쏟아낼 때조차 나를 끝까지 묵묵히 '참아주신 하나님의 인내' 덕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의 모난 모습을 묵묵히 참아주시며 늘 우리 곁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분명 캄캄한 인생의 광야를 걸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마음껏 불평과 불만과 괴로움을 쏟아냅니다. 나만 억울하다는 심정을 감추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금껏 내게 부어주신 그 크신 은혜와 인도하심은 모조리 까먹고 원망부터 합니다. 그런데 그 엇나가는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나님이 나를 매몰차게 버리신 곳이 아닙니다. 나의 치명적인 연약함을 가장 깊이 참아내시며 나를 품에 안고 가시는 가장 짙은 사랑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내가 진짜 믿음으로 훌쩍 자라나는 곳이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온전히 읽어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의 시간을 걷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깊이, 가장 애틋하게 돌보시고 계시는 시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의 크신 돌보심을 깨닫고 믿음으로 인정하는 그 순간, 여러분의 메마른 광야는 이미 생명이 넘치는 가나안이 될 줄로 믿습니다.

https://youtu.be/RWBCb2aZG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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