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58 - 허무와 고달픔을 '행복과 가치'로 바꾸는 것이 부활정신입니다.
2026. 4. 5. 20:4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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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2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생명과 희망이 넘치는 아침,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키프러스 섬의 로마 총독인 '서기오 바울'이 등장합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엘리트이자 정통 권력자였죠. 그 앞에서 마술사 엘루마의 눈이 머는 일이 있었죠. 바울의 호통 이후 생긴 일입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총독 서기오 바울은 주님을 믿었다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죠. 마치 기적같은 일을 보고 믿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요. 성경은 이를, 그가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생각하느냐하면, 원어의 의미로 볼 때, '감명'을 받았다는 의미가 훨씬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번역은 '감명'이라고 했지만 원어의 의미는 더 강한 어조를 띄죠. 제가 번역을 했다면 '경악했다' 혹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강한 영향을 받은 쪽은 보는 것보다 듣는 쪽이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많은 지적 능력을 가진 그를 경악하게 만들만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십자가는 가장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사형 틀이었습니다. 아주 비천하고 가치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 여겼기 때문이죠. 그런데 바울은 그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온 우주의 참된 왕이 되셨다고 외쳤습니다. 이는 마치 지금까지 가졌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반전의 복음이었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을 이긴 사건이 아닙니다. 저주의 나무를 희망의 십자가로 완벽하게 바꾸신, 반전과 변화의 사건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를 "가장 위대한 맞교환"이라고 불렀죠. 부활은 이처럼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내 삶의 가장 참담한 비극을 찬란한 축복으로 바꾸는 영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이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이적이죠. 아시다시피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이 이적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이적 사건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 어떤 사역을 하시려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바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끝났다 여기는 자리를 새로이 시작하는 자리로 만드는, 다시말해 전화위복의 변화를 이끄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은 내 앞에 놓인 최악의 상황을 원망하는 대신, 희망과 소망의 재료로 바꾸어내는 삶의 태도인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늙고 병들어 죽는 인생의 허무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사는 우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달픔과 허무의 한복판에 서서,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그것을 행복과 영원한 가치로 바꿉니다. 우리 앞에 놓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을 오히려 성장의 발판으로 바꾸죠. 끊임없이 몰아치는 아픔과 슬픔의 감정을 부여잡고 감사와 기쁨으로 재창조하는 일이 바로 우리 안에서 피어오르는 부활의 신앙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 주일이 되면 모여서 소리 내어 웃는 '부활의 웃음'이라는 전통이 있었다죠. 초대교회 성도들은 갖은 박해와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의 권세조차도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그 새롭고 산길을 믿으며 '이런 박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벽 앞에서 웃었던 것입니다. 박해는 나를 무릎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독려하고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동기부여라고 여긴 겁니다. 나쁜 일쯤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기적과 은혜의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반전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을 믿으십니까? 어떤 것을 믿으시나요? 역사적인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것이 전부입니까? 예수께서 부활의 열매가 되신 것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이 부활로 연 문을 우리도 걷게 하시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은 바로 우리도 그 길을 걷는 것이죠.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고, 가슴 아픈 현실 앞에서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활을 믿는 의미죠.
참된 부활 신앙의 표지는 사방이 막힌 절망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꿈꾸며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여유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는 절망과 무덤 문을 예수의 이름으로 힘차게 걷어차고 나오십시오. 세상이 경악할 만큼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놀라게 하는 든든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YHpgvzgvI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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