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57 - 내 삶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어둠'은 영의 눈을 뜨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026. 3. 26.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13:10~12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제법 옷들이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따스한 봄기운이 생기를 가져오듯 오늘 하루 여러분의 마음속 그늘도 주님의 빛으로 환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가득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바울이라고도 불리는 사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술사 바예수가 이 만남을 끈질기게 방해하죠. 총독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막아선 것입니다. 그러자 성령이 충만한 사울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매섭게 소리칩니다.
사울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복음을 가로막고 주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훼방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무거운 죄악이기 때문이죠. 초대교회 시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주님 앞에서 속임수를 쓰다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사울이 분노 섞인 외침을 쏟아내자 즉시 바예수의 눈이 멀어버립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통쾌한 장면입니다. 철저한 인과응보라고 할까요? 마치 정의가 굳건히 세워지고 불의는 처참히 괴멸한다는 진리가 속 시원하게 증명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참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사울이 소리 높여 외치는 이 장면이 단순한 분노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마치 바예수를 불쌍히 여기며 그에 대한 연민을 품은 모습처럼 말이죠. 제 해석이 조금 이상한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울은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3:10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이 외침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십니까? 거짓과 속임수로 살아가는 악한 자에게 가하는 매서운 일침처럼 들리시나요? 그런데 저는 이것이 마치 사울 자신에게 던지는 말처럼 들립니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나도 정의의 원수였다. 주님의 바른길을 앞장서서 방해하는 자였다."
사울의 뼈저린 고백처럼 들려옵니다.
그런 해석에 확신을 더해주는 것은 바로 11절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3:11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무서운 저주처럼 들리십니까? 오히려 자신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흘간 눈이 멀었던 그 캄캄한 장면이 겹쳐 보이는 것은 저만의 문제일까요? 11절 하반절에는 이런 기록도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13:11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마치 사울이 눈이 멀어 사람들의 손에 끌려 아나니아를 찾았던 것처럼, 바예수도 눈이 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을 다급히 찾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살다 보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둠이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일이 생기죠.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며, 왈칵 눈물만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내 힘과 지혜로 잘나가던 삶에 갑자기 질병이나 실패, 관계의 단절 같은 어둠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깊이 절망하죠. 세상이 끝난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버리신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자랑하던 육신의 능력이 가려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구해야만 하는 그 비참한 어둠의 시간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내 영적인 눈을 활짝 띄워주시려는 '다마스쿠스 도상의 은혜'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얄팍한 재능으로 남을 속이며 부와 명예만을 탐하던 바예수에게 지금의 눈 멈은 저주가 아니라 놀라운 축복입니다. 마치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그의 뒷목을 강하게 붙잡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과 같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폐부를 찌르는 아픈 조언, 아침마다 내 굳은 마음을 두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남 탓을 하며 외면하게 되는 그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확신에 눈이 멀어 기독교인들을 죽이려 짐승처럼 날뛰던 사울을 돌려세웠던 것처럼, 그 캄캄한 어둠이 나의 인생에도 가장 위대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아찔한 절망의 순간에 나를 향해 내미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굳게 잡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계획은 아직 남아 있어요. 주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728x90
반응형
'묵상하는말씀 > 사도행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묵상일기 162 -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을 경험해 보세요. (1) | 2026.04.09 |
|---|---|
| 사도행전묵상일기 161 - 때론 절망적인 상황이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합니다. (1) | 2026.04.08 |
| 사도행전묵상일기 160 - 여전히 우리는 귀한 자녀이고 쓸모있는 자산입니다. (0) | 2026.04.07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9 - 내가 꼭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0) | 2026.04.06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8 - 허무와 고달픔을 '행복과 가치'로 바꾸는 것이 부활정신입니다. (1) | 2026.04.05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6 - 생긴대로 사세요. (0) | 2026.03.25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5 - '방해'를 감사하세요. (0) | 2026.03.24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4 - 나의 '키프로스'를 사랑하십시오. (0) | 2026.03.23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3 - '다름'은 다툼의 영역이 아니라, 넓힘의 영역입니다. (1) | 2026.03.22 |
| 사도행전묵상일기 152 - 희망은 절망속에서 피어납니다. (0) | 2026.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