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50 - 신앙, 세상을 밝히는 깨어있는 시민의식입니다.

2026. 3. 18.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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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20~22   그런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몹시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뜻을 모아서, 왕을 찾아갔다. 그들은 왕의 침실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그를 통해서 헤롯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그들의 지방이 왕의 영토에서 식량을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정된 날에, 헤롯이 용포를 걸쳐 입고, 왕좌에 좌정하여 그들에게 연설하였다. 그 때에 군중이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하고 외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화단에 푸릇푸릇한 새싹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3월입니다. 마치 얼어붙어있던 땅이 녹고, 죽은 듯 보이지 않던 생명이 깨어나는 봄날의 기적이 우리 모든 공동체 가족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팍팍한 삶의 자리에 임하실 주님을 찬양하며 이 아침을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지역은 지중해 연안의 아주 부유한 무역 항구도시였습니다. 돈은 많았지만 지형상 농사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식량의 대부분을 헤롯 왕의 영토인 갈릴리와 유대 지역에서 수입해야만 살 수 있었죠.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헤롯이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무역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죠. 당장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다급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의 침실 시종인 블라스도에게 뇌물을 주고 로비를 하여 억지 화해의 자리를 만듭니다.

이윽고 화해의 날이 밝았습니다. 헤롯 왕이 눈부신 은빛 왕복을 입고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합니다. 그러자 밑에 있던 무리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소리칩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성경은 헤롯이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아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털어버릴 수 없는 묵직한 질문을 마주해야 합니다. 도대체 누가 평범한 인간 헤롯을 감히 신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까? 헤롯 스스로 우쭐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를 교만의 꼭대기로 밀어 올려 결국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뜨린 진짜 공범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밑에서 이성을 잃고 아부하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죠.

그들은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아부를 떨었을까요? 그것은, 헤롯의 영토에서 식량을 공급받아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 배를 불리는 경제적인 이익 앞에서는 지도자의 옳고 그름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 기꺼이 양심을 팔았습니다.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폭군을 향해 신이라고 아부했습니다. 이것은 먹고살기 위해 양심을 팔아넘긴 비겁한 생존 본능이었죠. 지도자의 타락은 언제나 이처럼 대중의 이기심과 비겁함을 먹고 자라납니다.

지도자의 교만은 결코 스스로 자가발전하여 거저 생겨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인으로 꼽히는 히틀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를 그 끔찍한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히틀러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에게 광적으로 열광했던 독일 국민들이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최근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군대를 동원한 전근대적인 내란 사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가 한 지도자의 광기로 인해 전쟁의 쑥대밭으로 변하는 고통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지도자가 나라와 세계를 얼마나 무질서와 혼란으로 몰아넣는지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지도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거세게 비난하죠.

그러나 정직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그 지도자를 누가 뽑았습니까? 누가 그에게 막강한 권력의 칼을 쥐여주었습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외면한 우리의 비겁함이 그들을 만들었습니다. 옳음과 정의보다 내 진영의 이익에 따라 맹목적으로 표를 던진 우리의 무지가 그들을 통제 불능의 괴물로 키운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참으로 뼈아픈 지적입니다. 시민이 무지하면 무지한 지도자를 낳습니다. 시민이 나태하면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가 생겨나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백마 탄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둠과 타협하지 않고 불을 밝히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나 혼자 마음의 평안을 얻고 천국에 가라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이 어두운 사회에 끊임없이 진리의 불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아모스 5장 24절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외칩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깨어있는 시민으로 만듭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깊이 돌아보십시오. 불의한 권력과 거짓된 이념 앞에서, 우리는 혹시 두로와 시돈 사람들처럼 내 이익을 위해 비겁한 박수를 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거짓된 광기에 결코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깨어서 감시하고, 용기 있게 진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깨어있는 신앙,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이 세상에 거룩한 빛을 밝히는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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