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37 -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2026. 3. 3.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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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까지 이어진 달콤한 연휴는 평안히 잘 보내셨는지요? 실질적인 한 주가 시작되는 화요일 아침입니다. 푹 쉬며 재충전하신 만큼, 오늘 하루 더욱 힘차고 활기차게 새로운 3월의 첫걸음을 내딛으시기를 간절히 응원합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덤덤하게 자신의 간증으로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간증의 마지막에 아주 놀라운 고백을 던집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억울함을 피하려는 궁색한 변명이 아닙니다. 위대한 사도의 위대한 항복 선언입니다. 평생을 지켜온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이 단숨에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늘 내 중심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내 열심, 내 계획, 내 뜻을 미리 정해둡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강요하죠.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지면 우리의 질문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려 하는가?"로 바뀝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가 무언가를 많이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바꾸도록 내어드리는 것이죠. 내 삶의 주어가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 내 얄팍한 상식과 고집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로막는 바리케이드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드로에게는 이방인과 밥을 먹지 않는다는 아주 깊은 유대인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랫동안 몸에 밴 익숙한 습관이 있죠. "원래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굳어진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전통이라도 주님이 새롭게 말씀하시면 바꿔야 합니다. 내 뜻이 아무리 완고해도 주님이 이끄시면 내 뜻을 꺾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가고 싶어도 주님이 멈추라면 멈춰야 합니다. 반대로 나는 죽어도 가기 싫지만 주님이 가라시면 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하나님을 조수석에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운전석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민수기 9장 23절을 보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고 행진했습니다. 구름 기둥이 머물면 며칠이든 멈추었습니다. 구름 기둥이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텐트를 거두어 행진했습니다. 철저히 주님의 시간표에 내 뜻을 맞춘 광야의 영성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의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신앙은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주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떼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관철되도록 조용히 항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완고함은 무엇입니까? 내 뜻을 꺾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가장 위대한 승리입니다. 내 고집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크기는 커집니다. 

"주님, 가라시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겠습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이 순전하고 단순한 고백으로 오늘 하루를 활짝 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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