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42 - 내 공식이 깨질 때,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됩니다.

2026. 3. 9.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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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1~2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그는 먼저 요한과 형제간인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롭게 허락하신 한 주, 주님의 넉넉한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 12장은 시작부터 우리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예수님의 핵심 제자였던 야고보가 헤롯의 칼에 허무하게 순교합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으로 기도하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린다"는 공식에 익숙하죠. 그런데 성경은 그 공식을 가차 없이 깨버립니다. 착하고 충성된 사람에게 최악의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몹시 괴롭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하는 의심과 혼란이 밀려오죠.

인간은 참 연약합니다. 좋고 나쁨, 선과 악을 내 기준으로 명확히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주 쉽게 정죄하죠. 제 개인적인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신학교 2학년 시절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선교 사절단으로 일본에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아주 존경받는 일본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식사 자리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어요. 그분들이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적인 신앙 안에서 자란 어린 신학생에게 그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보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즉각 정죄가 올라왔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술을 마시다니, 이래서 일본 기독교가 부흥이 안 되는구나!" 단정 지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영적으로 성장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잣대가 아니라, 나의 좁은 문화적 편견이 만들어낸 알량한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일본 목회자들을 향한 나의 섣부른 정죄나, 야고보의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절망은 사실 그 뿌리가 같습니다. 바로 '내가 정해놓은 고정관념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교만'입니다. 야고보의 순교를 인간의 잣대로 보면 완전한 실패입니다. 비극이죠. 사탄이 승리한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얄팍한 선악의 기준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우리가 가진 좋고 나쁨의 고정관념보다 더욱 위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가장 끔찍한 실패라고 부르는 아픔을 재료로 삼으시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가장 위대한 천국의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시기도 하죠. 실제로 야고보의 피는 초대 교회를 더욱 뜨겁게 묶어주는 거룩한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지금 내 삶에 야고보의 죽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까? 깊은 아픔이 있습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내 좁은 잣대로 평가하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내가 굳게 쥐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과감히 깨뜨리십시오. 우리는 늘 하나님을 '내가 만든 선악의 상자' 안에 가두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 상자를 부수고 당신의 크심을 증명하십니다. 내 인생의 가장 아픈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가장 위대한 축복을 빚어내는 거룩한 재료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내 생각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굳게 신뢰하십시오. 그리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0PFFABLFK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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