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41 - 남이 잘되어야 나도 잘 됩니다.

2026. 3. 8. 13:35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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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25~30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그 무렵에 예언자 몇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어나,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그대로 실행해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그것을 장로들에게 보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덧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봄기운처럼, 여러분의 삶과 가정 위에도 하나님의 생명력과 따뜻한 은혜가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의 훌륭한 지도 아래 크게 부흥했습니다. 보통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가 부흥하면 그 성과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1인자의 자리를 굳건히 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소에 숨어 지내던 바울을 직접 찾아가 데려와 공동 목회를 시작하죠. 이방인 선교를 위해 자신보다 바울의 신학적 깊이와 열정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겸손은 그저 나를 비굴하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위해 내 자리를 기꺼이 비워주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용기입니다. 이렇게 1인자가 2인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서로를 섬기는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이웃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느꼈고 그들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안디옥 교회의 이타적인 성품은 곧바로 행동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천하에 큰 흉년이 들어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극도의 가난에 처했을 때,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자기 살기도 바쁜 상황 속에서도 십시일반 구제금을 모아 보냈습니다. 복음의 뿌리인 예루살렘 교회가 무너지면 모두가 흔들리며, 그들이 살아나야 우리도 살 수 있다는 영적 상생의 원리를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지만, 본래 농경사회에서는 아주 아름다운 이타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사촌이 어렵게 새 땅을 샀으니, 내 배가 아파서라도 화장실에 가 가장 좋은 거름인 인분을 듬뿍 퍼다 주고 싶다는 눈물겨운 축복의 언어였던 것이죠.

우리는 흔히 내가 빛나기 위해 남의 빛을 꺼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작가 제임스 켈러는 "촛불 하나로 다른 촛불에 불을 옮겨 붙인다고 해서, 처음 촛불의 빛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방안은 두 배로 밝아집니다. 남을 칭찬하고 축복한다고 해서 내 성공이 멀어지지 않습니다. 성경 속 욥도 자신을 끊임없이 정죄하던 친구들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축복의 중보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끝내시고 이전보다 배나 더 큰 은혜로 갚아주셨습니다.

나 혼자만 잘되는 길은 결코 없습니다. 내 이웃이 잘되어야 내가 잘되고, 내 가족이 잘되어야 내가 잘됩니다. 벼랑 끝에서 나 혼자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면 결국 함께 떨어지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직장 동료, 이웃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십시오. "당신이 잘되어야 내가 잘됩니다"라는 고백으로 중보기도의 거름을 기꺼이 쏟아부을 때, 여러분의 삶에도 욥에게 내리셨던 갑절의 회복과 평안이 가득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VDhKVsgl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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