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36 -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은혜의 깊이로 상대하십시오.

2026. 3. 2.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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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4~16   이에 베드로가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황홀경 가운데서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에서 드리워져 내려서 내 앞에까지 왔습니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 위의 네 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내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된 것이나, 정결하지 않은 것을 먹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두 번째로 하늘에서 들려왔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모든 것은 다시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바로 그 때에 사람들 셋이 우리가 묵고 있는 집에 도착하였는데,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내게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이 내게,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천사를 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었습니다. 곧 천사가 그의 집에 와서 서더니, 그에게 말하기를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그가 네게 너와 네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말씀을 일러줄 것이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 성령이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시던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그 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의 첫 월요일, 감사하게도 덤으로 얻은 것 같은 휴일이네요. 여러분 모두에게 쉼과 평안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어제 우리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벅찬 은혜를 경험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베드로를 기다린 것은 칭찬이 아니라 날 선 비난이었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은 그가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과 밥을 먹었다며 거칠게 몰아세웠죠. 보통 이런 억울한 공격을 받으면 우리는 감정이 폭발합니다. 어쩌면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수석 사도 베드로야!"라며 권위를 내세우기 쉽죠. "너희가 그때 그 현장에 있어 봤어?"라며 목소리를 높였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본문 4절을 보면 베드로는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대로 설명하여"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화내지 않았습니다.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주 덤덤하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죠.

교회 안팎에서 우리가 다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 논리가 맞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자존심과 권위를 세우고 싶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대화와 논쟁의 목적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진짜 목적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이해시키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상처를 받습니다. 

"논쟁에서 이기면 사람을 잃고, 은혜를 나누면 사람을 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토론 대회의 트로피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싸움의 목적이 승리가 아니라 교회의 하나 됨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갈등을 풀 때 상대를 찌르는 '너 전달법(You-Message)' 대신, 내 감정과 상황을 말하는 '나 전달법(I-Message)'을 쓰라고 권합니다. 베드로의 설명이 바로 영적인 아이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너희들의 신학이 틀렸어!"라고 상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가 욥바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게 이런 환상을 보여주셨고, 성령이 내게 가라고 하셨습니다"라며 자기 이야기를 차분히 털어놓았습니다. 

갈등을 잠재우는 것은 논리나 목소리의 크기가 아닙니다. 내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목소리를 높이지 마라. 대신 너의 주장을 강화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강력한 주장은 내 논리가 아니라,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간증입니다.

베드로의 설명에는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 팩트만 담겨 있었습니다.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담백하게 사실만 말할 때, 듣는 사람도 비로소 경계심을 풉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비판합니까? 억울해하며 분노로 맞서지 마십시오. 먼저 감정을 덜어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덤덤하게, 차례대로 설명하는 침착성을 기르십시오. 내 입술에 날 선 논리가 아니라 부드러운 간증이 맺힐 때,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어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언어생활에 대해 묵상했죠. 오늘도 우리는 조용히 우리의 언어 생활을 다시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대화할 때 나를 증명하려 합니까, 아니면 하나 됨을 추구합니까? 남을 향해 '너'라고 삿대질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게 주신 은혜를 '나의 간증'으로 덤덤히 나누고 있습니까? 갈등의 불을 끄는 것은 내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차분히 나누는 간증입니다. 베드로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자신의 은혜를 덤덤히 나누었을 뿐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어 모두를 하나 되게 하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오늘 하루, 논리로 상대를 이기려는 입술을 닫으십시오. 대신 내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차분하게 나누십시오. 미움과 갈등을 평화와 하나 됨으로 바꾸는 복된 피스메이커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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