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15 - 편견을 깨뜨려야 더 큰 사람이 됩니다.
2026. 2. 5.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9:43 그리고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욥바에서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묵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모르고 지나갔는데 어제가 입춘이었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물론 아직 추위는 물러가지 않았겠죠?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그렇게 주님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따스한 봄날 같은 은혜 주실 주님을 기대하는 오늘 되시길 빕니다.
우리 묵상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때론 다른 본문이지만 제목이 같은 묵상들이 있죠. 저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 거부감이 있습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 계실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했던 말 아냐? 이미 들어서 아는데 또 말씀하시니 지겹다' 그런 분도 계실지 몰라요. 저 또한 그런 소리 듣기 싫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한 번 저는 했던 말을 또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이 저에게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선,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들을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는 것, 들을 것을 잘 따르고 있나요?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릅니다. 운동선수가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하며 몸에 익히듯, 말씀의 반복은 우리 영혼의 근육을 만드는 훈련입니다. 오늘 또다시 주시는 이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나의 삶을 점검하는 거울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딱히 이해할 내용이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욥바에 온 베드로가 어디서 기숙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죠. 그냥 사실관계만 확인하고 넘어갈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짧은 한 절은 저자 누가, 아니 성경의 메시지에서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이 뒤에 나올 10장의 이야기를 위한 주춧돌처럼 여겨졌습니다. 곧 묵상하겠지만 사도행전 10장에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 이야기가 이어지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욥바에 온 베드로는 그곳에서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아마도 이 시몬은 욥바의 기독교인이었겠죠. 베드로와 같은 제자가 왔다면 아마도 욥바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집에 모시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중에 시몬이 당첨된 것은 그에게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행운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욥바 내에서 존경받고 지도자급의 사람이었을까요? 사실 정확히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욥바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존경받거나 인정받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직업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가 무두장이라고 기록하죠. 무두장이는 한 마디로 가죽 가공 기술자를 말합니다. 현대에서는 고급 기술자에 속하죠.
그러나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유대 사회에서는 시체를 만져야 했기에 율법적으로 부정한 직업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또한, 가죽을 다루는 과정에서 나는 역한 냄새 때문에 마을 외곽에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죠. 그렇게 유대인들이 가장 기피하고 혐오하는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정통 유대인인 베드로가 욥바의 그 많은 집을 놔두고, 하필이면 그 냄새나고 부정한 무두장이의 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내면에서 이미 율법주의적 편견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 고넬료에게 보내기 전에, 먼저 혐오 시설인 무두장이 집에서 자게 하시며 마음의 워밍업을 시키신 것입니다. 편견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더 큰 선교의 문을 열 준비를 시키신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더 크게 쓰시기 위해 먼저 깨뜨리시는 것은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입니다. 내가 싫어하고 피하던 사람,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관계의 문이 열리고 지경이 넓어집니다.
편견과 차별은 우리가 버려야 할 첫 번째 숙제입니다. 왜냐하면 편견과 차별이 바로 우리의 영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편견과 차별은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자라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일하심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적인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내 영이 다칩니다. 편견과 차별이 내 안에 많으면 내 영이 위축되죠. 정말 내가 자라고 싶다면 내 안의 편견을 거두세요. 내 영혼이 자유로운 주님의 은혜 통로가 되길 바란다면 차별과 편견을 버리세요. 그것이 우리의 지경을 넓히는 첫걸음입니다.
https://youtu.be/Vng67czVk9w
728x90
반응형
'묵상하는말씀 > 사도행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묵상일기 119 - 성화는 과정입니다. (0) | 2026.02.10 |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8 -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0) | 2026.02.09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7 - 여러분의 아즈카라는 무엇입니까? (0) | 2026.02.08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6 -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균형잡힌 신앙입니다. (0) | 2026.02.06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4 - 기적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0) | 2026.02.04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3 - 일상이 곧 성직입니다. (1) | 2026.02.03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2 - 믿음은 누웠던 자리를 개는 것입니다. (0) | 2026.02.02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1 - 흘려보낼 때 더 크게 채워집니다. (0) | 2026.02.01 |
| 사도행전묵상일기 110 - 혼자 크는 나무는 없습니다. (0) | 2026.01.30 |
| 사도행전묵상일기 109 -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습니다. (0) | 202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