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13 - 일상이 곧 성직입니다.
2026. 2. 3.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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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36~39 그런데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가인데,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에 이 여자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겨서 다락방에 두었다.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이다.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그에게로 보내서, 지체하지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베드로는 일어나서, 심부름꾼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그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그를 다락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지낼 때에 만들어 둔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여 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화려한 주말도 아니고, 시작의 설렘이 있는 월요일도 아닌,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지루할 수 있는 화요일입니다. 하지만 작은 바늘땀 하나하나가 모여 멋진 옷이 되듯, 오늘 여러분이 반복하는 그 평범한 일상이 모여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룸을 기억하는 소중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제 룻다에서의 기적에 이어, 오늘은 베드로의 사역이 ‘욥바’로 이어집니다. 지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어제의 배경인 룻다는 현재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이 있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30km쯤 가면 지중해 해변 도시 욥바가 나옵니다. 오늘날 이곳은 ‘텔아비브-야포’라고 불리며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포’가 바로 성경의 욥바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스라엘의 내륙에서 해안으로, 즉 예루살렘을 넘어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그곳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비다는 아람어이고, 그리스어로는 도르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6절에 그녀를 지칭하는 아주 특별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여제자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여성에게 제자라는 공식 타이틀을 붙인 유일한 사례가 바로 오늘 본문의 다비다입니다. 이는 그만큼 초대교회 안에서 그녀의 존재감이 대단했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그녀가 어떤 위대한 일을 했기에 이런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을까요? 그녀가 죽자 슬픔에 잠긴 마을 사람들이 베드로를 불렀습니다. 베드로가 가보니 사람들이 울며 무언가를 내보입니다. 그것은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어준 속옷과 겉옷이었습니다. 그녀는 베드로처럼 명설교가도 아니었고,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사역 도구는 고작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를 사도들과 동급인 제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 뉴스에서 뉴욕의 한 샌드위치 가게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평생 샌드위치를 팔던 한인 노부부가 은퇴하며 문을 닫자, 이웃 주민들이 찾아와 감사를 전하며 깜짝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무려 18,000불(약 2,400만 원)이 넘는 거액의 모금액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무료로 나눠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정당하게 돈을 받고 파는 가게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토록 고마워했을까요? 알고 보니 부부는 오랜 시간 샌드위치를 팔면서 이웃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을 건넸던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는 넉넉함을, 외로운 자에게는 위로를 빵 사이에 끼워 팔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업을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이웃 사랑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부를 보며 다비다를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다비다도 옷을 만들어 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바느질은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깁는 거룩한 도구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던집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이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흘려보낸 선행과 사랑이 그를 진짜 제자로 증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강단 위에서만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요리, 운전, 서류 작성, 청소, 아이를 돌보는 일, 이 모든 것이 누군가를 섬기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이 곧 거룩한 성직(聖職)이며 제자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내 직업이나 재능을 무엇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혹시 단순히 먹고사는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관점을 바꾸십시오. 일상이 곧 성직입니다. 다비다의 바느질이 제자의 증표가 되었듯, 오늘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감당하는 하루가 곧 성경의 역사이자,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https://youtu.be/KXjtkfYjc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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