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98 - 과도한 분노는 찔림의 반증입니다.

2026. 1. 16.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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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1~2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날이 조금 풀렸죠? 그래도 바람은 찹니다. 밖은 춥지만, 우리 마음만큼은 성령의 불로 따뜻하게 데워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차가운 말씀이 내 심장을 찌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찔림이 결국 나를 살리는 수술 칼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복된 아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를 묘사할 때,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기록합니다. 원어적인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그는 지금, '위협과 살인을 호흡하고 있다(breathing threats and murder)'는 뜻입니다. 사울은 단순히 공무를 수행하는 차원을 넘어, 온몸으로 살의를 내뿜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무려 240km나 떨어진 다메섹까지 원정을 떠나겠다고 자청하죠.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요? 이 정도의 집착과 과도한 행동 뒤에는 반드시 숨겨진 동기가 있습니다.

이 분노의 시발점은 7장의 스데반 순교 현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울은 그곳에서 스데반의 천사 같은 얼굴과,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죠. 그 거룩한 장면은 사울의 양심과 신념을 깊숙이 찔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혼란스러웠을테죠.

"저 자가 믿는 예수가 진짜인가? 내가 틀렸나?"

하지만 사울은 그 찔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평생을 바쳐온 율법적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강하게 거부하고 화를 냅니다. 그의 폭주와 살기는 내면의 흔들림을 감추기 위한 과잉 방어기제였던 것이죠.

진짜 확신에 찬 사람은 여유가 있습니다.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사울이 그토록 살기등등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가, 자신의 논리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과도한 분노는 '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내 안의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영혼의 비명과도 같아요. 사울의 살기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스데반을 통해 들어온 '진리'를 밀어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비추어 보십시오. 혹시 당신 안에 이유 없는 분노나 말씀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향해 유독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과도한 분노는 옳다는 증거가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내가 틀렸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강하게 두드리고 계시다는 신호죠. 하나님의 찔림이 있을 때, 가장 지혜로운 반응은 저항이 아니라 항복입니다. 사울처럼 끝까지 버티다 길 위에서 꼬꾸라지지 마십시오. 말씀의 가시가 우리를 찌를 때, 그때가 바로 우리의 자아가 죽고 예수가 살아야 할 타이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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