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96 - 신앙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입니다.

2026. 1. 14.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8: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겨울의 한복판,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홀로 추위를 견뎌냅니다. 그 고독한 추위가 때로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듯, 오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깨워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하는 거룩한 각성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감격의 순간, 성경은 아주 기이한 장면을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8:39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작별 인사나 축복 기도, 혹은 후속 양육에 대한 약속도 없는 아주 갑작스러운 이별입니다. 에키오피아 내시에게는 귀히 얻은 영적 스승이자 멘토인 빌립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 막 신앙에 입문한 내시에게는 당황스럽고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광야에 다시 홀로 남겨졌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내시가 당황하거나 슬퍼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고 합니다. 어떻게 멘토가 사라졌는데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빌립은 내시에게 예수를 알게 해 준 너무나 귀한 통로였습니다. 그의 설명과 도움이 없었다면 내시는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내시에게 필수적인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시에게는, 빌립은 사라졌지만 예수는 남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완벽한 신앙의 결말입니다. 중매쟁이는 신랑과 신부를 만나게 해 준 뒤에는 빠져야 합니다. 만약 중매쟁이가 계속 둘 사이에 끼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방해일 뿐이죠. 빌립이 계속 곁에 있었다면, 내시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빌립을 더 의지했을지도 모릅니다. 신앙의 성숙은 사람(빌립)의 도움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결국에는 그 사다리를 걷어차고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사다리에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되는 거죠.

내시가 빌립의 부재를 슬퍼하지 않고 기쁘게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이제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과 직통하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이상 영적 어린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독자(The Single One)의 개념을 배웁니다. 신앙은 군중 속에 숨어서, '우리 목사님이 훌륭하니까', '우리 부모님이 잘 믿으니까', '우리교회가 크니까'라며 묻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훌륭한 멘토나 시스템 뒤에 숨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등 뒤에 숨은 우리가 아니라,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 발가벗고 홀로 선 나 자신입니다. 광야에 홀로 남은 내시는 외톨이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 것입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광야 길에서, 그는 이제 스스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기에 기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누군가의 '덤'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대리할 수 없고, 은혜는 양도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신앙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거친 광야 길일지라도,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주를 바라보는 주체적인 단독자만이 참된 기쁨을 누립니다. 이제 당신의 '빌립'을 떠나보내고 내가 '빌립'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의존하던 마음, 환경을 의지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이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합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힘겨운 기도의 싸움을 싸워야 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수고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평안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멈춘 시간이 아니라 힘겨운 싸움을 싸우면서도 이미 이길 줄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https://youtu.be/R1792u1NQtY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