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87 - 진리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때 성령이 우리의 삶에 임하십니다.

2026. 1. 2.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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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14~17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로 보냈다. 두 사람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해의 두 번째 날입니다. 어제 우리는 착한 사람을 넘어 말씀의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 그 말씀이 우리의 머리를 넘어 가슴으로, 그리고 손끝으로 이어져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조금 특이합니다. 빌립에 의해서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에서 그곳에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너무 기뻐서였을까요? 아니면 빌립으로는 감당이 힘들어서였을까요? 그런데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이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죠. 본문은 물로 세례를 받은 것과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짓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 누가가 시몬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어제 묵상했듯이 시몬은 세례를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놀라움'에 머물고 있었죠. 그 예를 들면서, 오늘 지적인 동의와 삶의 동의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신앙이 가슴 뜨거운 체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죠. 문화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신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의 '등록 교인'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거룩한 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제게는 더 중요한 점이 눈에 띄였습니다. 사실 왜 빌립은 성령 세례를 줄 수 없었을까 하는 점에 의문이 생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굳이 베드로와 요한이 가야만 했을까 싶었죠. 왜냐하면 마치 사도와 집사의 영적 차이를 드러내는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 한 구절에서 더욱 세밀하고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섬세하심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17절의 말씀이죠.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전에 묵상했던 내용을 조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분란이 생겼던 것을 기억하시죠?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갈등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집사들을 뽑았는데 그들의 이름으로 미루어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묵상한 바 있죠?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하면 그리스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인들과도 결을 같이 하는 이들이었던 거죠. 어쩌면 그래서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기가 더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비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 토박이죠.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사마리아인과는 전통적인 적대관계에 있는 이들이라는 뜻이죠. 그들이 와야만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믿음은 혐오와 편견을 뛰어넘어 연합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죠. 이 또한 우리가 묵상한 내용입니다. 신앙의 첫 걸음은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고백하죠.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손을 어디에 얹었는지는 정확히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머리에 얹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시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지만 당시 그런 행동은 거의 없었죠. 몸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것은 제사 드릴 때 제물에 손을 대고 나의 죄를 전가시키는 용도였습니다. 오히려 유대 정결법에는 함부로 남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죠. 게다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이런 법적인 문제를 떠나 정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파격적인 스킨십을 합니다. 더러워서 상종도 안 하던 사람들을 형제로 끌어안은 것이죠.

내가 쌓은 담을 헐어야 성령의 바람이 붑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몸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혐오를 넘어 연합의 행동을 한 거죠. 거기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에는 성령의 바람이 일지 않습니다. 미움의 벽을 허물고 편견과 차별을 넘어 내가 손을 뻗어 터치하는 순간, 우리 안에 성령이 폭포수처럼 임합니다. 성령은 '진리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때', 그리고 '미움이 있던 자리에 용납과 연합이 일어날 때' 임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손을 얹어야 할 사마리아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성령의 임재는 무엇입니까?

 

https://youtu.be/jowyBUUb0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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