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79 -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2025. 12. 23.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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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44~50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 살 때에, 그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 모세가 본 모형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장막을 물려받아서,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땅을 차지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그것을 그 땅에 가지고 들어왔고, 다윗 시대까지 물려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므로,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한 것과 같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은 어쩌면 끝없는 광야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하루,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성전이 되고, 내가 드리는 작은 기도 하나가 하늘 문을 여는 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은 스데반의 설교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순교를 앞둔 스데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행한 이 설교는 단순한 변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앓아온 치명적인 영적 질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수술 칼처럼 날카롭게 도려내는 메시지였습니다. 스데반은 그들이 얼마나 형식에 갇혀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건물 안에 가두려 하는지를 폭로합니다. 이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독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두려움 없이, 이스라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클라이맥스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다녔던 성막, 그것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성막은 장막이었습니다. 천으로 만들어진, 접고 펼 수 있는, 이동 가능한 구조물이었죠. 왜 하나님은 견고한 돌로 된 건물이 아니라 천막 같은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이동하시는 분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떠돌 때, 그들이 어디로 가든 성막은 함께 옮겨졌습니다. 백성들이 장막을 치는 곳에 성막도 함께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계신 분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찾아가는 성전이 아닌 함께하는 성전의 개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특별한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늘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삶의 자리, 내가 밥을 먹는 그곳, 내가 일하는 장소,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어디나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와 삶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예배는 주일 아침 한 시간만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삶이 예배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친절한 말 한마디, 어려운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 정직하게 일하는 나의 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지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과 삶을 완전히 분리해 놓았습니다. 성전은 성전대로, 삶은 삶대로 살았던 거죠. 성전에서는 경건한 척하고, 율법을 암송하며, 거룩한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문턱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의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외우면서도, 정작 사회적 계급 타파에는 눈을 감았습니다. 말씀과 삶, 예배와 삶이 완전히 유리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법률로 남을 돕는 일에 대해 적어놓고, 형식적으로 그 일을 하면서 나는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차별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 것이죠. 이러한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것은 성전을 따로 지어놓고, 그 성전과 삶을 분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죠.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우리 사회의 ‘특수학교’나 ‘특수병원’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해 전문적인 시설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더 ‘특별한’ 생각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우리는 흔히 장애 학생들이 일반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들에게’ 불편할까 봐 특수학교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우리가’ 불편해서, 그들을 ‘특별한 곳’이라는 명목 하에 한 곳으로 몰아넣고 격리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생활하는 곳에 왜 그들이 함께 할 수 없습니까? 시설비가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서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일반적인 공간에 그들은 들어 올 수 없습니까? 함께 살기 위해서는 시설비가 들어도 다 고쳐야 하지 않습니까? 일반학교를 그렇게 다 고쳐야 되는 것은 아닌가요?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들을 특별취급을 한다면 그것이 차별 아닌가요?
특별한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것은 그날만 기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날을 기념하되, 그날을 더 특별히 기억한다는 의미죠. 어버이날이 있다고 해서 그날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한 날을 지정하고 그날만 기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편하고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전을 따로 지어놓고, 그곳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어렵고 불편합니다.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교회 건물 안에 가두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전은 어디입니까? 바로 내가 생활하는 삶의 자리입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는 침실, 가족과 식사하는 식탁, 땀 흘리며 일하는 사무실, 친구를 만나는 카페, 그 모든 곳이 성전입니다. 그 삶의 자리에서 예배하고, 주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일에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는, 흩어진 삶의 자리에서 드린 그 예배를 서로 나누고 증언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이어야 하죠.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단체에서만,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내 자리에서,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남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 편의점 직원에게 하는 감사의 말, 길에서 마주친 노인에게 양보하는 자리, 동료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는 시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진짜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예배당에 가두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 안에만 하나님을 모셔놓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숨 쉬는 곳, 내 발길이 닿는 곳에 늘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이동할 때마다 성막을 들고 함께 갔던 것처럼, 내가 가는 어느 곳이든 주님과 동행하는 마음이 신앙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성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교회 건물 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스데반이 목숨을 걸고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입니다. 이동하는 성막처럼, 우리의 삶도 주님과 함께 움직이는 성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5HYsexXp0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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