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69 - "내 힘으로 하면 될 줄 알았다."

2025. 12. 11.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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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24~28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서, 압박받는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 동포가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튿날 모세는 동족들끼리 서로 싸우는 자리에 나타나서,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들아, 그대들은 한 형제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서로 해하는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료에게 해를 입히던 사람이 모세를 떠밀고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어제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또 나를 그렇게 죽이려 하는가?'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의 후반부를 달리는 아침입니다. 다소 지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오늘도 변함없는 말씀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어제 우리는 모세가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는 과정을 묵상했습니다. 아무리 왕궁이 편하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도, 결국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오리지널 디자인’, 즉 자기만의 사명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남과 다릅니다. 나에게는 나만의 고유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존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교훈을 줍니다. 사명을 깨달은 자가, 그 사명을 자기 방식자기 힘으로 이루려 할 때 어떤 처참한 실패를 겪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 유대인이 이집트 사람에게 억울하게 매 맞는 것을 보고 울분에 차, 그만 그 이집트 사람을 쳐 죽이고 맙니다. 모세는 자신의 이 행동에 대해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늘 본문 25절은 모세의 속마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자기 동포가 하나님이 자기 손을 빌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러니까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 사람을 처단하면 동족들이 "와! 우리 왕자님이 드디어 우리를 구원하려 하시는구나!"라고 알아주고 환호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출애굽기에는 나오지 않는 스데반 집사만의 통찰입니다.

사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고도 당당하기는 더더욱 힘들죠. 그러나 모세는 아직 이집트의 왕자였습니다. 그에게는 권력과 지식뿐 아니라 무력도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람 하나 죽인다고 해서 별문제가 되지 않을만한 힘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게 나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먹을 휘두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손으로 하려는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주먹(폭력)으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모세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다음날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러 간 모세에게 그들은 이렇게 대듭니다. 

사도행전 7:27,28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어제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또 나를 죽이려 하는가?"

스데반이 이 말을 인용한 의도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을 배척했고, 모세를 배척했으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도 배척했다는 그들의 완악함을 고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미는 따로 묵상을 나누겠습니다. 지금은 모세의 사명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 중입니다. 모세는 아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신발을 벗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세 스스로 셀프 기름부음을 받아 나선 것이라는 거죠.

사명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듯,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인생을 기억하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고유번호 같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내 마음대로, 내 힘으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 사명을 감당할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마치 광야의 기간처럼 말이죠. 그때 우리는 사명을 나의 정체성과 가치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래전 이탈리아 성악 콩쿠르에 한국인 지원이 제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콩쿠르 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라는데, 여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들이 단순히 배가 아파서 제한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성악가들이 음악의 깊이와 영혼보다는, 콩쿠르 입상을 위한 기술과 고득점만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시험을 위해 준비하고, 통과를 위해 매진합니다. 하지만 실력과 깊이는 상관하지 않는 문화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보고서를 쓰는 이유는 그 보고서가 모든 사회의 유익을 위해서지 보고서의 통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험만 잘 보고 통과만 잘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미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그런 것입니다. 내 힘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준비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겸손히 준비하며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eG9g3FDaW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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