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65 -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2025. 12. 7. 13:47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7:11~15 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재난이 극심하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우리 조상들을 처음으로 거기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두 번째 갔을 때에,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이 일로 말미암아 요셉의 가족 관계가 바로에게 알려졌습니다. 요셉이 사람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야곱과 모든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모셔 오게 하였습니다.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그도 거기서 살다가 죽고, 우리 조상들도 살다가 죽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또한, 오늘 함께하는 예배를 통해 삶의 퍼즐을 맞추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요즘 세상은 정말 빠르죠. 아침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부딪치고 지나가면,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무례한 사람'으로 판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젯밤 병원에서 밤을 새웠다는 것을, 지금 급한 면접에 가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릅니다. 직장에서 승진에서 누락되었을 때, 우리는 "내 인생은 실패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3년 후 그 승진 탈락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계기가 될지, 번아웃을 피하는 은혜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나무 한 그루는 보지만 숲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한 장의 퍼즐 조각을 들고 "이게 전부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국 고사성어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의 말이 사라졌을 때,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만 노인은 이렇게 말하죠.
"어쩌다 이 일이 복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소?"
몇 달 뒤 사라졌던 말이 암컷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고, 마을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노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이 일이 해가 될지 누가 알겠소?"
얼마 후 노인의 외아들이 새 말을 길들이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노인을 위로합니다. 하지만 노인은 또 이상한 말을 하죠.
"어쩌면 이 일이 복이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소?"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갔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친 다리 때문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 화가 되고, 나쁜 일이 복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합니다. 왜 하필 요셉일까요? 요셉의 인생만큼 재수 없는 인생도 드뭅니다. 17세에 형들에게 배신당해 노예로 팔렸고,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되게 일했지만 성폭행범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지만, 관원장은 요셉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각각의 순간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요셉의 인생은 재앙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각 단계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지 않은데, 성경은 함께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좁은 시각과 넓은 시각의 차이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렇게 시작하죠.
사도행전 7:11 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재난이 극심하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기근이 왔습니다. 이것도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기근 때문에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갔고, 요셉과 재회했습니다. 만약 기근이 없었다면? 요셉은 가족들을 못 만났을 것입니다. 가나안은 굶어 죽었을테죠. 유대인의 구원 역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전체 그림이 보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린 것은 재앙이 아니라 '위치 선정'이었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것은 불행이 아니라 '네트워킹'이었으며, 2년간 잊혀진 것은 좌절이 아니라 '타이밍 조절'이었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통 그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우리가 그 고통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요셉은 창세기 50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재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현재의 고난을 더 큰 그림 안에서 보십시오. 지금 쓰여지고 있는 이 장(chapter)이 전체 책(book)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 모릅니다.
둘째, 조급함 대신 인내를 훈련하십시오. 요셉은 13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준비입니다.
셋째, "왜 나에게?"에서 "무엇을 위해?"로 질문을 바꾸십시오. "왜"라는 질문은 우리를 과거와 원망에 묶어두지만,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은 우리를 미래와 소망으로 이끕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시고, 우리의 시야보다 넓으십니다. 오늘 하루,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더 큰 그림을 그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묵상하는말씀 > 사도행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묵상일기 70 - 힘을 빼야 물에 뜹니다. (0) | 2025.12.12 |
|---|---|
| 사도행전묵상일기 69 - "내 힘으로 하면 될 줄 알았다." (0) | 2025.12.11 |
| 사도행전묵상일기 68 - 사명이 내 영혼을 숨 쉬게 합니다. (0) | 2025.12.10 |
| 사도행전묵상일기 67 - 난세(亂世)에 영웅이 납니다. (0) | 2025.12.09 |
| 사도행전묵상일기 66 - 침묵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1) | 2025.12.08 |
| 사도행전묵상일기 64 - 고난이 없는 것이 형통이 아닙니다. (0) | 2025.12.05 |
| 사도행전묵상일기 63 - 고난은 끝이 있으며, 구원은 목적이 있습니다. (1) | 2025.12.04 |
| 사도행전묵상일기 62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그것이 믿음입니다. (0) | 2025.12.03 |
| 사도행전묵상일기 61 - 변화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로부터 시작됩니다. (1) | 2025.12.02 |
| 사도행전묵상일기 60 - 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다. (0) | 202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