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67 - 난세(亂世)에 영웅이 납니다.

2025. 12. 9.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7:18~21   마침내,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임금이 이집트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임금이 우리 겨레에게 교활한 정책을 써서, 우리 조상들을 학대하되, 갓난아기들을 내다 버리게 하여서, 살아남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 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용모가 아주 잘 생긴 아기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석 달 동안 몰래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 뒤에 어쩔 수 없어서 내다 버렸는데, 바로의 딸이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삼아서 길렀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침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는 요즘, 묵상과 함께 따뜻한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도 대우를 받았죠. 한 사람이 잘하면 그 가족과 주변이 대접받습니다. 하나를 잘하면 열 가지를 인정받아요. 그렇게 유대 민족은 이집트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집트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들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유대 후손을 요셉의 가족이 아닌 이집트에 빌붙어 사는 이방 소수 민족으로 보기 시작했죠. 게다가 유대 민족은 이전보다 훨씬 많아져서 이제는 이집트를 위협할 정도의 규모가 되었으니 새로운 이집트 왕은 그들을 제거할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죠. 유대 민족이 아들을 낳으면 강에 버리라는 교활한 정책을 썼던 거죠. 

좋은 시절이 다 갔습니다. 이쯤되면 아마도 '왜 우리가 이곳에 와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투정을 부렸을테죠. 이집트에 와서 굶어 죽지 않았던 그 은혜는 온데간데 없이 우리는 고난 앞에서 여전히 불평을 늘어놓게 됩니다. 그렇게 또 다른 어둠이 유대 민족을 덮치죠. 민족의 미래가 강물에 던져지는 절망의 시대,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성경은 그를 "용모가 아주 잘 생긴 아기"라고 표현합니다. 이게 좀 설명이 필요한데요. 개정개역본에서는 이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언뜻 다른 이유는 새번역의 직역 때문이죠. 본래 원문을 직역하면, '하나님 앞에서 출중한 아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요. 보통 히브리어 관용구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형용사 뒤에 붙이면 그것이 최상급이 되거든요. '하나님의 산'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백향목'은 아주 큰 나무를 뜻하게 되는 겁니다. 새번역은 이런 관용구로 번역한 거죠. 좀 쉽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개역본 번역이 더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이라는 거죠.

이게 신기해요. 새로운 이집트 왕은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모두 나일강에 던져버려, 이스라엘의 소망을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계획이었던 것인데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가 던지라고 명령한 바로 그 강물에서 구원자를 내셨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아이가 압제자의 궁전에서, 원수의 자원으로 양육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억압하려 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해방자를 키워낸 셈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설입니다. 악이 극에 달할 때, 하나님의 구원도 절정에 이릅니다.

이를 모세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요.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부모 품에서 키울 수 없었고, 평범한 가정의 일상을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상실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과 지혜로 교육받았습니다. 왕궁의 자원과 최고 수준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인과 애굽인, 양쪽 세계를 모두 아는 지도자로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3개월간 숨겨졌던 아이는 40년간 왕궁에서 민족을 이끌 리더십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수학은 이렇습니다. 빼앗긴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채우십니다.

우리도 난세를 살아갑니다. 불의한 상황에 내몰릴 때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공격받고 훼방당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럴 때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는 나일강을 무덤으로 만들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요람으로 바꾸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원수가 빼앗으려 할 때, 하나님은 업그레이드하십니다. 난세는 하나님이 영웅을 준비하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우리를 업그레이드 하는 시간이 되죠.

강물에 버려진 아이가 애굽 궁전에서 자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머이자 역설입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세력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더 좋은 것, 더 뛰어난 것을 주십니다. 빼앗김은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해 손을 비우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마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가 바로 하나님이 더 복된 것을 준비하시는 때입니다.

우리 각자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를 더 큰 그릇으로 빚으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방해와 훼방은 결코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납니다. 지금 우리를 가로막는 그것이,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리시는 발판은 아닐까요? 절망하지 말고, 기대하십시오. 우리의 난세는 우리 안의 영웅을 깨우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 소망 가운데 담대히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UKz0Q4LHRl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