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58 - 충만함이 능력입니다.
2025. 11. 28.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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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8~11 스데반은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서,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그 때에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 가운데에서 몇이 들고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그들은 스데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를 열심히 달려온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운 금요일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도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거뜬히 이겨내시기를, 그리고 한 주간 수고한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함께하기를 응원합니다.
같은 본문으로 벌써 세 번째 묵상을 나눕니다. 새로운 본문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고 나면 자꾸만 주님께서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부어주셔서, 그 은혜를 나누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네요. 마치 광맥을 발견한 광부가 조금 더 깊이 파들어 가보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오늘 이 나눔을 통해 숨겨진 보석 같은 은혜를 함께 캐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스데반에 관한 이야기를 앞서 두 번이나 묵상했는데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시죠. 스데반은 사도가 아닙니다. 그는 집사입니다. 며칠 전 묵상했듯,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그리고 구제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즉, 스데반은 음식을 베풀고 구제하는 행정적인 일을 위해 뽑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은 그가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식탁 봉사를 하라고 뽑았더니, 사도들처럼 기적을 행하고 다녔던 것일까요?
물론 직분에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사도의 일도, 집사의 일도 다 거룩한 ‘디아코니아(섬김)’임을 우리는 이미 묵상했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역할의 구분(업무 분장)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이 행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자신의 본분인 구제 사역을 내팽개치고 사도들처럼 거리로 나가 설교하고 병을 고치러 다녔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기적은 그가 맡은 일, 즉 사람들을 돌보고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가 사랑으로 음식을 나누자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날 선 분쟁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적, 소외감에 상처 입은 과부들의 마음이 치유되는 기적, 서로를 헐뜯던 사람들이 서로 돕고 하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가 식탁에서 아픈 성도들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할 때, 육신의 질병이 떠나가는 역사도 일어났으리라 봅니다. 즉, 그의 기적은 강단 위가 아니라, 가장 낮은 섬김의 현장에서 일어난 ‘생활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은 어떻게 밥을 퍼주는 일상적인 사역을, 놀라운 기적의 현장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비결을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서"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충만’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헬라어로 충만을 뜻하는 ‘플레레스(pleres)’는 단순히 컵에 물이 가득 찬 것 같은 ‘양(Quantity)’의 개념을 넘어서, ‘지배력(Dominance)’을 의미합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으면 물의 지배를 받듯, 어떤 생각이나 영이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고 통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은 단순히 은혜를 조금 많이 받은 상태가 아니라,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모든 생각과 의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밥을 풀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그의 모든 방향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게 은혜가 그를 지배하자, 그가 하는 평범한 일들이 비범한 기적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종일토록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 자체가 된다."
잠언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죠.
잠언서 4:23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나의 생각을 채우는 것이 곧 나의 미래가 됩니다. 내 안에 불평이 충만하면 불화가 일어나고, 내 안에 계산이 충만하면 삭막함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은혜가 충만하면, 내가 하는 작은 설거지 하나가 기적이 되고, 내 건네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표적이 됩니다.
많은 것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괜찮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충만한가!’입니다. 늘 충만한 사람이 일을 냅니다. 은혜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 사람이 소문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 뜻이 확실한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하나님은 뜻을 정하고 일관되게 나아가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온전히 사로잡히는 ‘몰입’과 ‘충만함’의 문제입니다.
오늘 하루,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내면을 가득 채우십시오. 그 충만함이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을 기적의 현장으로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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