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54 - 모두 다 중요한 사역입니다.

2025. 11. 24.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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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3~4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바람이 한층 더 차가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주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어제 우리는 갈등 속에서 공동체의 ‘우선순위’를 정비하는 사도들의 지혜를 묵상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구제와 봉사라는 ‘좋은 일’을 전담할 일곱 집사를 세우기로 결단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얼핏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마치 ‘거룩하고 중요한 일(말씀)’은 사도들이 하고, ‘잡다하고 하찮은 일(식탁 봉사)’은 집사들에게 넘기는, 이른바 ‘수직적인 업무 분장’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도 은연중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강단에 서는 일은 ‘귀한 사역’이고, 주방이나 주차장에서 땀 흘리는 일은 ‘허드렛일’로 나누는 계급적 사고방식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원어 속에 숨겨진 비밀은 우리의 이런 편견을 산산이 부수어 버립니다. 신학자들은 교회의 3대 기능을 케리그마(선포), 코이노니아(교제), 디아코니아(섬김)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의도적으로 1절의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는 일’과 4절의 ‘말씀을 섬기는 일’에 똑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디아코니아(Diakonia)’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여 먹이는 일’이나, ‘주방에서 국자를 들어 밥을 퍼주는 일’이나 본질적으로 똑같은 ‘섬김(Service)’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우리는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고 한 것은 "우리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의 디아코니아(말씀 섬김)에 충실할 테니, 너희는 너희의 디아코니아(식탁 섬김)를 맡아달라"는 ‘거룩한 역할 분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성직(聖職)’과 ‘잡직’이 따로 없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목회자도 ‘디아코니아 사역자’이고, 뜨거운 불 앞에서 밥을 짓고 설거지하는 봉사자도, 주차장에서 차량을 안내하는 봉사자도 엄연한 ‘디아코니아 사역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사역과 보이지 않는 곳의 묵묵한 뒷정리 사이에, 하나님의 저울은 완벽한 수평을 이룹니다.

이 원리는 교회 밖으로도 확장됩니다. 가정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청소하는 일, 직장에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 그 모든 것이 주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거룩한 ‘디아코니아’입니다.

혹시 "내 사역은 너무 작아",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위축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손에 들린 것이 성경책이든, 국자든, 걸레든, 마우스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도들과 똑같은 무게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서로의 사역을 ‘높고 낮음’의 계급이 아닌 ‘다름과 조화’의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섬기는(디아코니아) 모든 손길 위에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와 상급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Cwc5m2iYU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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