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3 - 십자가의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5. 8. 20.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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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3:44~45   어느덧 낮 열두 시쯤 되었는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는 빛을 잃고,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곧 해가 뜨겠죠? 밝은 햇살을 기대하는 시간인데 오늘 본문이 제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아마 그날에는 해가 빛을 잃었던 모양이에요. 마침 제 마음을 아는지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우리에게도 비가 내리고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이 있죠. 그런 시간은 사실 반갑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저는 그런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귀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음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간이 있어 이 자리가 있음에 감사했어요. 제가 말씀드리죠? 어둠의 시간에는 빛날 시간을 기대하며 지내라고요. 반대로 빛날 시간에는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어둠의 시간을 위해 깊이 은혜를 충전해 놓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이 시간이 바로 그 충전의 시간이길 빕니다.

십자가 형장에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낮 12시면 가장 햇살이 밝을 때인데요. 그날은 온 땅에 어둠이 덮여 마치 밤과 같았던 것 같아요. 이를 누가는 해가 빛을 잃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십자가가 고난의 상징이기보다 부활의 상징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한다는 것은 그분으로 인해 펼쳐질 새로운 시작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서 부활의 기쁨을 떠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중심은 고난이 아니라 회복이며 부활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프고 가장 잿빛의 하루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또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죠. 그것은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사건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 사건인지 알려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는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잠깐, 혹시 오해하실 분들이 계셔서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말씀드리는 성전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요.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성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차차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테니 잠시 덮어두고요. 성전이 갖는 의미를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구조와 배치, 만들어진 디자인은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서로 만들어져 있죠. 오늘날 예배의 구조와 순서가 다 이 성전의 구조를 따라 진행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의 구조를 조금 살펴보아야 하는데요. 성전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는 성소라는 곳이고요. 다른 하나는 지성소라는 곳입니다. 아래 그림을 참조해 보시면 됩니다.

큰 둘레가 성막이고 윗쪽에 위치한 것이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성막 안으로는 모든 이들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성소나 지성소, 주로 이곳을 성전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로 제사장들이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만 출입이 가능했죠. 그런데 지성소는 더욱 출입이 까다로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죠. 그 이유는 죄를 지닌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무리 우리에게 유익한 불이라도 거기에 손을 집어 넣으면 데이듯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완전하지 못한 우리가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가슴에는 소리나는 돌과 함께 몸에 밧줄을 묶었다고 하죠.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휘장이 있습니다. 휘장이라는 말이 어렵죠? 영어로는 veil인데요. 우리말로 뭐라고 할까요? 망? 가림막? 쉽게 커튼 정도로 하죠. 교회에 가면 강대상 뒤에 커튼이 늘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게 휘장이죠. 휘장이 있는 이유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그어 놓은 것과 다름없죠.

그런 휘장이 오늘 본문에서 찢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엄청난 선언입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그 경계를 허무셨음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대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중재자나, 1년에 한 번이라는 시간적 제한, 동물의 피라는 제의적 조건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믿는 모든 사람은 이제 누구나, 언제든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사라진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휘장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거죠.

히브리기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휘장 이야기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것이 천국에 대한 막연한 소망을 넘어,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거룩한 장소나 특별한 시간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지성소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삶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가 기쁨과 감사를 느끼는 순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순간,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며 손을 내미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됩니다.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성전이 되었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찢어 그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십자가의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습니다. 담대하게 그분께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 땅에서부터 그분의 나라를 일구어 나가는 영적인 개척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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