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6 - 우리의 마음이 성전입니다.
2025. 8. 24. 12: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반응형

누가복음서 23:50~53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공의회 의원이고,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 사람의 고을 아리마대 출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삼베로 싼 다음에,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다가 모셨다. 그 무덤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것이었다.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지난 한 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을 묵상했습니다. 예수께서 골고다를 오르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과정을 따라 묵상을 나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리마대라는 지명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 대목에서만 등장하는데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곳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 논란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가 공의회 회원이었다는 사실과 의로운 사람이라는 품평으로 보아 상당한 위치의 사람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오늘은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 전에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둡고 비통했던 순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현장으로 잠깐 다시 돌아가 보려 합니다. 그날, 정오의 태양이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둠에 잠겼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보였던 바로 그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찢어지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었죠. 우리는 지난 수요일 아침, 이 찢어진 휘장의 의미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제목이, ‘십자가의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였는데요. 이 부분이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어서 다시 한번 언급하며 묵상을 복습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 수요일 묵상에서 제가 잠시 언급하고 설명을 드리지 않았던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물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성전’과 오늘날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그 개념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그날,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이유입니다. 아시다시피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시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해 직접 디자인하신 장소였습니다. 성막 안에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는 공간을 말하죠. 그곳에는 손을 씻는 곳과 재물을 드리는 단, 그리고 촛대나 떡상 등 여러 장식과 기구들이 있는데요. 이런 장치들을 다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장치들이 있는 이유와 의미는 아셔야 해요. 이것은 예배의 순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교회에 가면 예배 순서라는 것이 있죠? 예배의 부름에서부터 찬송, 고백, 봉헌 등의 순서가 있는데요. 이 순서는 그냥 막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전의 디자인과 연결된 거죠. 그러니까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 셈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성소까지는 제사장의 출입이 가능했어요. 그런데 지성소에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죠.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출입이 제한되었느냐 하면, 제가 설명드린 것처럼 불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어서 음식을 데우거나 끓일 때 좋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좋아도 내가 그 불에 손을 넣을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는 불을 견딜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아무리 만나고 싶으셔도 죄 있는 우리가 그분을 대할 수는 없었던 거죠. 그래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겨우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 사이, 그러니까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이 바로 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그 휘장이 찢어진 거죠.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제 더이상 하나님을 누군가 대신하여 만날 필요도, 그리고 규정한 어떤 특정한 장소에 하나님을 국한 시킬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죠. 이를 두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0:20 예수께서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서 기도하고 주님의 영광 앞에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을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없었어요. 제사장이 대신 기도하고, 대신 제물을 드렸죠.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이죠.
우리 교회는 교회 장식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이 우리 교회가 특별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이 공간이 카페인데 빌려서 예배 드려서 그렇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저는 소위 우리가 익숙한 교회 공간이 만들어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성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옛날 교회에 보면 앞 강단에 휘장이 있는 것 보셨죠? 그 앞에 촛대도 있고요. 언약궤처럼 큰 성경을 펼쳐 놓은 것도 보셨을 겁니다. 그 모든 것이 성전의 디자인을 따른 거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어떻게 되었다고요? 이제 그런 장소가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성전을 모욕하는 것도 아니고요. 전통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대로 저는 목회하고 싶어요. 우리교회가 어쩔 수 없어서 장식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장식이 이제는 필요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진정한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렇습니다. 휘장이 찢어진 그 순간, 하나님은 돌로 지은 건물에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더 이상 예루살렘의 특정 건물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의 자리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우리들이 모여서 함께 사랑의 교제와 나눔을 하는 모임을 말합니다. 건물이나 공간이 아니고요. 우리가 만나는 것, 그것이 교회죠. 헬라어로 교회는 에클레시아인데요. 뜻이 바로 ‘모임’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마음의 성전’을 삶으로 증명해 보인 한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죠.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모두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흩어졌을 때, 그는 홀로 빛을 향해 걸어 나갔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성전 된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힘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아름다운 예배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아름다운 권력, 가장 거룩한 재물
오늘 본문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누가복음서 23:50~51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공의회 의원이고,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 사람의 고을 아리마대 출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습니다. 몇 주 전에 이 공의회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죠? 유대 사회에서 70명의 지도자 중 하나였으니 엄청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는 불의한 동료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그들의 광기 어린 결정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으로 저항했거나, 어쩌면 소신껏 반대 의견을 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안위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말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가 그동안 매번 묵상했던 언어로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세상이 다 힘들고 어렵고 되는 일도 없다고 부정적으로 말할 때, 오로지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지금도 그렇게 일하신다고 믿으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믿음은 기다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자, 그는 마침내 행동에 나섭니다. 당시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의 시신은 그냥 방치되거나, 공동묘지에 버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 두려워 숨어버린 상황에서, 누가 감히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나아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자신 또한 예수의 추종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지위를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는 공의회 의원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나아갑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권력의 가장 아름다운 사용법입니다. 권력은 나를 드러내고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연약한 자를 돕고 정의를 세우는 도구로 사용될 때 비로소 거룩해집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 [권력](Power: A New Social Analysis)에서 권력을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사회적 능력을 사용하여 아무도 할 수 없었던,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반드시 필요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시신은 온전히 장사 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헌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5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서 23:53 그는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삼베로 싼 다음에,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다가 모셨다. 그 무덤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을 소유했다는 것은 상당한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죠. ‘아직 아무도 묻은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다는 것은, 아마도 요셉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무덤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 내어드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자를 위해 새 무덤을 내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쩌면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장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투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 된 마음으로 보니, 자신의 재물이 자신의 만족과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흐르는 가장 중요한 길목에 사용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영광이요 축복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를 주일 아침 교회에 나와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행위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귀한 예배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짜 예배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합니다.
로마서 12:1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시간과 재능, 우리가 가진 권력과 재물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요,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성전을 세웁시다. 그리고 그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지혜를 구합시다. 여러분이 가진 영향력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재능과 재물은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그것이 나만을 위한 성을 쌓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리마대 요셉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길을 예비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까?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책 [나를 따르라](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서 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드리는 것을 ‘손해’나 ‘희생’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작은 힘, 작은 재물이 주님의 손에 들릴 때, 그것은 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살리고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성전으로 봉헌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끝낸 비극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위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마음이 성전이 된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용감한 믿음의 행동으로 자신의 권력과 재물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거룩한 성전으로 내어드리라고 초대하십니다.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계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어드릴 때, 그곳에서부터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재능, 여러분의 영향력과 재물을 통해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교회가 세워지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성전을 가진 자들이 드리는 살아있는 예배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 오늘 아리마대 요셉처럼 나의 마음을 주님의 성전으로 온전히 봉헌하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힘과 지식과 재물을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결단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의 진실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가 되고,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빛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묵상하는말씀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81 - 믿음은 행동이 증명합니다. (1) | 2025.08.29 |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80 - 우리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0) | 2025.08.28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9 - 이해할 수 없어도 말씀을 꼭 간직하세요. (0) | 2025.08.27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8 - 하나님은 지금, 가장 낮은 자를 들어 일하십니다. (0) | 2025.08.26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7 -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0) | 2025.08.25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5 - 세상을 감동시키는 것은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0) | 2025.08.22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4 - 진짜 인생은 내 영혼을 주님 손에 맡길 때 시작됩니다. (0) | 2025.08.21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3 - 십자가의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0) | 2025.08.20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2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0) | 2025.08.19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1 -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0) | 2025.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