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72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5. 8. 19. 05: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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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3:39~43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매일 아침 새로운 문을 열고 나서는 것과 같다고 말이죠. 사실 그 문밖에는 어떤 길이 펼쳐질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용기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우리의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모여 우리의 인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내딛는 모든 발걸음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여, 평탄하지 않은 길이라도 기쁨으로 걸어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무대인 골고다 언덕을 바라봅니다. 그곳엔 3개의 십자가가 나란히 서 있고, 그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죠. 그리고 그의 양옆에는 이름 모를 두 죄수가 달려 있습니다. 이런 배치가 저는 참 신기해요. 분명한 의도가 있는 배치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고통과 죽음의 문턱 앞에서 이 두 사람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여기서 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이 떠올랐어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질문은 단순히 목숨을 끊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입니다. 세상이 주는 고통과 부조리에 굴복하여, 세상의 논리대로 냉소하고 절망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한 현실 너머의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붙들고 '존재하기'를 선택할 것인지의 물음이었죠. 오늘 골고다에서 주님 옆에 선 두 죄수는 마치 재판장의 검사와 변호사처럼 양쪽에 서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한쪽 죄수는 세상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죠. 그의 외침,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는 당시 힘 있는 종교 지도자들, 로마 군인들, 그리고 예수를 향해 조롱을 퍼붓던 수많은 군중의 목소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류의 시선'이며, 세상이 말하는 '넓은 길'의 논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힘으로 현실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보이라는 요구죠.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요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가득합니다. 세상의 논리에 순응하여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길, 바로 햄릿이 말한 'not to be'의 길이죠.
그러나 다른 한쪽 죄수는 이 거대한 조롱의 합창에 균열을 내는 파격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그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어가는 예수에게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실패와 죽음의 한복판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고, 그 나라의 왕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세상의 논리로는 완전히 미친 소리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고백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수의 길'이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의 본질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끝이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른 차원의 희망을 발견하고 붙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게 '살아있는 것', 즉 'to be'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죠.
결국 골고다의 두 죄수는 우리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넓은 길, 주류의 길이 안전하고 옳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 기준이 넓고 좁음, 주류와 비주류에 있지 않다고 분명히 보여줍니다. 진짜 중요한 기준은 이것입니다.
'그 길의 끝에 낙원이 있는가?'
두 번째 죄수는 자기가 아는 길, 경험해 본 길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낙원'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는 죽어가는 한 사내의 눈빛과 태도 속에서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평안과 진실을 발견했고, 그 미지의 가능성에 자신의 마지막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런 영적인 개척과 같습니다. 모든 정보가 주어진 지도를 들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한 신뢰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매일 각자의 골고다 위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세상의 큰 목소리와 내면의 작은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그 증거죠. 세상은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강한 힘을 증명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라고 우리를 부추기죠. 하지만 우리는 오늘 십자가 위의 한 죄수를 통해 다른 길을 봅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신뢰하며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할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기서 '오늘'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낙원은 죽음 저편의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세상의 논리를 거슬러 미지의 길을 선택하는 바로 그 결단의 순간, '오늘' 우리에게 펼쳐집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오늘, 이미 우리는 낙원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넓은 길입니까, 아니면 주님이 약속하신 낙원으로 향하는 좁은 길입니까? 부디 세상의 소리에 압도당하지 말고,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리의 음성에 귀 기울이세요. 그리고 용기 있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도합니다. 그 걸음 위에 주님의 약속이 임하여, 우리의 오늘 하루가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복된 낙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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