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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75 -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뻐하세요.

요한일서 4:20~21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심신이 많이 지쳐 계실 여러분에게 오늘 주님의 특별한 은혜와 위로하심이 시원한 강물처럼 흐르길 원합니다. 주시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이제 사도 요한의 집요함을 여러분은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원리를 깨닫기 원함이 아닌가 싶어요.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점이 있죠. 그것은 메시지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주어진 메시지의 의미를 해석할 때 원리보다 사건에 더 집착할 때가 있죠.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으로 예를 들자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말씀을 통해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깨닫는 것이죠. 그 해석은 형제자매, 이웃, 어떤 상대방에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이러다 보니 이런 경우가 생기네요. 형제자매에게만 잘하면 그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의 지인 가운데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친구가 있었어요. 아버지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죠. 그런데 그 아버지는 교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님이었습니다. 특별히 이웃을 돕고 교인들에게 잘하기로 유명한 분이셨죠. 그 때문에 그 친구는 더욱 하나님과 교회에 상처를 받고 자라났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듣죠. 그런데도 말씀을 해석할 때 그 원리보다 사안에 더 집중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리죠? 이웃사랑은 주인공이 이웃이 아니라고요. 내가 기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고요. 그래서 저는 사도 요한의 사랑 메시지를 읽으면서 이웃 사랑이니,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니 하는 메시지로 그의 글을 읽는 것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사도 요한의 메시지는 남에게 잘하라든지, 이웃을 공경하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뿐이에요. 이게 다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갖는다면 이웃과의 관계 또한 자연스레 풀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기까지 우리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두려움이 없을 거예요. 우리의 기쁨은 내 주위를 평안하게 할 것이고, 우리의 감사는 나를 부러워하고 나를 돕는 이들이 주위에 넘치게 할 거예요. 그렇게 내가 웃고, 너그럽고, 평화롭다면 내가 하는 일 또한 형통할 것입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깨비방망이로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도깨비방망이가 되는 거죠. 나를 통해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능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하는 거예요. 그때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변합니다. 그때 나의 세상이 달라져요. 그때 나를 돕는 이들이 생기고, 그때 해야 할 일들, 꿈꿨던 일들이 이루어져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뻐하세요.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세요. 내 영을 기쁨의 안식처로 만드세요. 그런 나에게 주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의 권세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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