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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74 - 우리의 신앙은 받을 은혜의 조건이 아니라 받은 은혜의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4: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한 주간, 최선을 다해 삶의 자리를 기쁨과 감사로 지킨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경주는 마무리가 중요하죠.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쁨으로 오늘을 채우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빕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에 익숙한 분들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이 말씀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선포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죠.

 

사실 무엇이 먼저냐는 논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것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유도, 또한 우리를 구원하신 것까지 모두가 주님의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사랑의 저작권은 하나님에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오늘, 원론적인 의미로만 이 말씀을 묵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살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묵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결코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사도 요한은 선포하죠. 이는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에 조건이 붙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령, '우리가 사랑하면 좋은 것이 오겠지', '내가 사랑하면 나도 사랑받겠지'와 같은 조건 말이죠. 참 유치한 말 같지만 사실 교회생활에 익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이런 광경을 종종 봅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겠지'. '내가 봉사하고 구제하고 남을 돕고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사랑을 베푸시겠지'와 같은 조건적 사랑 관계가 상식화되어 버린 경우죠.

 

물론 교회생활도, 신앙생활도, 그리고 이웃사랑도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고, 우리에게 긍휼이 있고, 우리에게 공감과 배려가 있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요. 이미 주신 은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조건적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태도를 보시면서 무언가를 주시는 분이 아니시죠. 그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때에도 먼저 사랑하셔서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시죠.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나의 필요를 나보다 더 먼저 아시죠. 그래서 우리에게 없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태도는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간구는 하나님이 모르셔서 알려드리는 도구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을 찾고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나의 다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을 조건적으로 하지 마세요. 우리의 신앙은 받을 은혜의 조건이 아니라 받은 은혜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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