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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71 - 웃으면 복이 옵니다.

요한일서 4: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무더위와 장마로 고통받는 이들이 없기를 이 아침 기도합니다. 사회적 아픔들을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할 일을 할 수 있길 바라요. 그것은 숱한 문제와 아픔에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주님의 영성을 수호하며 오늘도 기뻐하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가 내가 있는 자리에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되길 기도합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 땅에 드러내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곧 주님의 등대라는 뜻이죠. 주님의 살아계심을, 주님의 선하신 능력을,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넘어 은혜와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죠. 나를 통해 하나님이 현현(顯現 Epiphany)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그 사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주셨다고 선포하죠. 마치 등불에 기름을 부으시듯 주님의 영으로 하여금 우리가 빛을 내도록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이 본문과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고린도후서 4:6~7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주셨다고 하셨죠. 그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났던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누가보아도 빛났던 그 영광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찌그리고 불만 가득한 얼굴뿐이었기 때문이죠. 언제 나의 인생에도 해 뜰 날이 있을까? 한탄하며 살아갔던 우리에게 이미 주님께서 세상을 밝히는 빛을 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진 것 없고, 능력도 없고, 세상을 바꿀 힘은 더더욱 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 뭔가를 달라고 요구하는지도 모르죠. 그 요구에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못 만드셨어요.'

 

외람되지만 하나님이 잘못 만드신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죠. 그 보물을 질그릇에 담았다고요. 아시다시피 보물은 그 영광이고 질그릇은 우리를 뜻하죠. 왜 질그릇이라고 했을까요? 질그릇이라는 뜻은 말 그대로 하찮은 그릇이죠. 보물이 하찮은 그릇에 담겼다는 것은 크게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 자신을 비하할 생각이나 무시할 마음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이런 대비를 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의 관심사는 늘 질그릇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놋그릇이 될까? 금그릇이 될까? 생각했기 때문이죠. 신기하게도 우리는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 그저 질그릇일 뿐입니다. 아무리 치장하고 닦아도 질그릇 이상이 될 수 없어요.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때 빼고 광낸다고 해도 그저 인간일 뿐이죠. 

 

바울은 우리에게 질그릇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긴 보물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혹시 박물관 같은 데 가보셨나요? 우연히 어떤 위인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오래된 연필이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비싸지도 귀하지도 않은 그저 누구나 쓰던 연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필이 추앙을 받아요. 왜 그럴까요? 그 연필이 특별해서요? 재료가 좋거나 무슨 기능이 있어서요? 아닌 것 다 아시죠? 단지 그 연필을 쓴 사람 때문이죠. 누가 썼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금칠을 해도 사람이고, 은칠을 해도 사람이에요. 똑같이 죽고, 똑같이 병들고, 똑같이 삽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도 다 똑같은 사람이죠. 다만 그 사람의 가치는 그 질그릇에 담긴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빛을 낼 때만이 온전한 가치가 매겨지는 거죠. 

 

좀 어려운가요? 그래도 결론은 간단하고 쉽게 정리하자고요. 여러분의 얼굴이 빛나는 때는 언제일까요? 우리는 누누이 기뻐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했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빛나는 것은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할 때뿐입니다. 그 기쁨이 제자들조차도 '여기가 좋사오니' 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 기쁨이 싸움을 거는 자들조차도 마음을 녹게 만드는 권세입니다. 그러니 웃으세요. 우리가 웃을 때 주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서 밖으로 나옵니다. 웃을 때 향기가 나고요. 웃을 때 빛이 나죠.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우리의 웃음은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을 밖으로 표출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웃을 때 내 안의 보물이 빛을 냅니다. 그러니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우리에게 있는 어떤 지적, 경험적, 재능적 능력보다 훨씬 나의 가치를 높여줄, 크고 강한 영향력은 '웃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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