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0. 06:50ㆍ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모처럼 어제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힐링스폿이 있습니다. 집에서 바라보는 푸른 나무 숲이 그래요. 높은 지대의 집이라 숲이 내려다 보이죠. 그 푸르름을 보노라면 모든 고단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어제 새벽, 오랜만에 그곳을 내려다보며 내 마음도 푸르른 생동감이 도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네요. 우리에겐 우리가 모르는 푸르른 기운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늘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아도 둘러보면 숨겨진 은혜와 위로들이 있어요. 삭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와 위로, 돌보심의 손길들을 느끼며 힘을 얻는 하루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죠. 이 부분이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쉽게 이야기한다면 자신을 주시기까지 한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죠. 이는 하나님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만물보다도, 어떤 법칙보다도 우리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죠. 그것은 그 사랑이 하나님 스스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죠. 누가 부탁한 것도, 누가 빌어서도 아닌 하나님의 자의에 의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호칭할 때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누군가의 하소연에 의한, 그러니까 종교적 제사나 간구에 의한 존재도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이죠.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결정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죠. 오로지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만 움직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단지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스스로 존재하시고, 자신의 뜻대로 일하시는 그분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마음을 다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아는 거죠.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뭐가 잘되고 뭐가 이루어지고 하는 데 있지 않아요.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히 여기시며 모든 마음을 다해 관심을 두고 일하시는 그 중심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나를 위한 일들임을 믿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우리의 감정은 삶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라고 우리가 묵상했잖아요? 사랑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사랑이 되고 안 되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가 닮은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성인데요. 그 영성이 바로 우리가 세워야 하는 감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했죠. 사랑과 기쁨, 화평과 인내,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와 절제, 이것은 다 스스로 있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요구나 필요에 의해 사용되는 감정도 아닙니다. 이는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감정들이죠. 그때 그 역사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가요?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누가 사랑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기쁨을 주었다고 감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좋은 상대를 만나서 평화로운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의 감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뻐할 수 없을 때도 스스로 기뻐하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기쁨으로 사랑하며, 원수들이 판을 쳐도 내 안에 평안을 지킬 수 있는 것이죠. 이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고, 그분의 형상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때 작은 나를 통해 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때 나의 감정은 세상을 바꾸는 큰 능력이 되죠.
사랑은 남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남들의 반응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기뻐서 하는 거죠. 그렇게 스스로 존재하는 나의 감정만이 우리가 알 수 없는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저 나를 위해 좋은 감정을 가지세요. 나를 위해 좋은 기분을 가지세요. 너무 남 눈치 보지 마세요. 내가 눈치 보고 남 걱정한다고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첨언인데요. 내용이 당혹스러우실 수 있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끔 자기 좋자고 남들을 고생시키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않느냐 하는 분들 계시더라고요. 자기 좋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내 감정을 좋게 할 수 있으면 괜찮죠. 뭐 남들까지 신경 씁니까? 배려라는 것은 남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나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만큼, 내가 좋은 감정을 유지하는 것만큼 남을 배려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너를 위해 내가 이런 것까지 한다'는 식의 배려는 오히려 남에게 부담만 주죠. 내 곁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평안해하는 것만큼 나에 대한 좋은 배려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남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박해하고 깔보며 스스로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쁜 척, 좋은 척은 할 수 있어도 결코 그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일부러 그러는 사람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게 성격이라서 자기만 좋은 사람들이 스스로 모를 것 같죠? 아닙니다. 자신도 알아요. 결코 그런 자신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은 늘 불안해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진짜 믿으셔야 합니다. 내가 기쁘다면 그것은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좋아한다면 그 감정은 다른 사람들도 평안하게 만듭니다. 이게 원칙이에요. 내가 사랑을 품으면, 잠시는 잠시는 동요가 있더라도 분명히 그 진심은 드러납니다. 그리고 드러난 사랑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작용하죠. 그러니 괜찮습니다. 나 홀로 사랑해도, 나 홀로 기뻐해도, 나 홀로 감사해도 괜찮아요. 기뻐하는 것은 나 혼자 했지만 그 기쁨은 나에게서만 머물지 않아요. 모든 이들을 물들입니다. 그러니 남 눈치 보면서 사랑을 논하지 마세요. 상황을 보면서 내 감정을 판단하지 마세요. 내 영성과 감정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세요. 우리의 사랑은 스스로 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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