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3. 06:50ㆍ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 4:2~3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친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이럴 때는 먹는 것도 주의하셔야 하죠. 모쪼록 더욱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잘 관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빌어요. 잊지 마세요. 어려움이 더할수록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밝은 미소와 밝은 첫마디를 잊지 마세요.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보다 좋은 기대와 상상으로 시작하시는 것, 순간순간 놓치지 마시고요. 바쁜 와중에 잠시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잘 지키며 오늘을 살아내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인지 알 수 있다고 하죠. 그리고 제시한 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분히 당시 영지주의 사상을 겨냥한 말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영지주의 사상 가운데 가현설(Docetism)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현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신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그 형상을 본 것일 뿐 실체는 없었다는 것이죠. 가현이라는 말이 거짓 가(假) 나타날 현(現)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죠. 이 주장이 제기된 이유는 영지주의는 영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나 육체는 죄로 물든 존재로 여기며 경시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마치 우리가 홀로그램을 보듯 예수님을 보았다는 주장인 겁니다. 사실 허무맹랑한 주장 같지만 당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 주장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그래서 사도 요한이 강하게 반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가현설과 같은 사상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부분에 대해 어떤 묵상을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물론 영지주의적 사상이 우리 가운데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 사안만큼은 따로 묵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오늘날대로 당시 가현설에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문제들이 우리를 현혹하고 넘어뜨리려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하죠. 그 영이 이미 와 있다고 말이죠. 이는 우리가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이는 다분히 경고의 의미를 담아 하신 말씀이죠. 다시 말하자면 우리에게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권면하시는 겁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비유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죠. 길가나 돌짝밭,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좋은 옥토에 뿌려진 씨앗이 갑절의 열매를 거둔다는 말씀이죠.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말씀이기에 다른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말씀은 보이는 간단한 논리의 이야기보다 훨씬 깊고 값진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죠. 그중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묵상해 온 말씀으로 이어서 이 비유를 묵상한다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씨앗은 의인이나 죄인이나, 교회나 교회 밖이나 어디든 뿌려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과는 다른 거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모두에게 미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모두가 아닙니다. 오로지 그 사랑을 깨닫고 알고 기뻐하는 자리에서만 열매 맺기 때문이죠. 이를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과 그분이 일하시는 것은 다르다는 표현으로 묵상한 바 있죠.
믿음이 믿음을 낳습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아요. 기대가 희망을 낳는 법이죠. 결코 걱정이 희망을 낳지 못합니다. 의심이 주님의 은혜를 낳을 수 없죠. 기쁨이 기쁨을 부르고, 좋은 생각이 그 안에서 일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과 만납니다. 우리의 선택은 간단해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시나요? 그렇다면 좋으신 하나님을 담을 좋은 생각을 하세요. 사랑의 하나님을 담을 믿음의 기쁨으로 나를 채우세요. 복 주시는 하나님을 바란다면 그분의 복이 활성화하는 자리, 감사로 제사를 드리세요. 찬양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머무시고, 희망을 놓치지 않는 자리에 하나님이 일하시죠. 좋은 옥토는 그런 곳입니다. 오늘도 좋은 옥토로 무장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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