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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60 - 기쁨의 빛을 내세요.

요한일서 3:2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는 오늘, 사랑하는 공동체 가족들 모두에게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미 지난 묵상에서 오늘 본문, 정확히는 요한일서 3장의 마지막 부분인 23~24절은 요한일서 3장을 요약 정리하는 구절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죠.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을 통해 하나님이 그 무엇보다 크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보다, 어떤 잘못보다 하나님의 용서와 새롭게 하심이 더 강하고 크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의 호소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뭐랄까요? 하나님에게 오직 해결책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 나아오라 권면하고 있는 거죠.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계명과 명령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도록 강권하고 계신 겁니다.

 

다시 한번 저도 강조하며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내가 지은 죄보다 크고 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잘못된 판단보다 넓고 깊어요. 하나님의 권세는 우리의 어떤 문제보다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 앞에서 알량한 자존심은 버리고 언제나 주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나오는 우리 되길 기도합니다.

 

이제 오늘은 사도요한이 콕 집어서 말한 하나님의 계명 두 번째를 묵상합니다. 그는 서로 사랑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적시하고 있죠. 물론 우리에게는 익숙한 말씀입니다. 이웃 사랑, 서로 사랑은 당연한 그리스도인들의 대명사가 되었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로 설명을 달 필요가 없을 만큼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최대의 관심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수차례 이 부분을 함께 묵상했고, 어제도 주일 공동체예배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3장을 통해 누누이 강조했던 부분에 대해 정리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묵상했던 내용도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찬양도, 신앙도, 우리의 삶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는 개념을 지금껏 고수해 왔기 때문이죠. 이 개념은 옳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사랑으로 엮인 관계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개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나쁜 관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는 마치 나의 안위를 위해서 바다에 제물을 바치는 미신과 같은 제사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 인간은 그저 소모품 취급을 하는 종교적 권위자들을 등장시키기도 했죠.

 

저는 단언컨대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조정하려는 하나님의 강압적인 규율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마치 주인이 노예를 부를 때 사용하는 규율처럼 말이죠. 주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에 주셨음을 믿습니다. 그의 명령은 주인을 위해서 노예에게 행하는 강압적 폭력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에 주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품은 믿음도,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찬양도 모두, 주님을 위한 소모품이 아닌,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하고 그분의 은혜를 누리는 방법으로써 우리에게 제시된 것임을 저는 믿어요. 곧, 우리가 잘 되는 것이 주님이 잘 되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흐르는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거기에 서로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그 이웃이나 타인을 위한 일이기 이전에, 내가 품은 그 사랑이 주님의 사랑을 부르고 주님의 마음에 합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내가 내 안에 기쁨과 감사를 품고 있다면, 그 기쁨과 감사의 빛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죠.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내 안에 주님을 믿음으로 기대와 소망이 흐르고, 이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넘친다면,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랑의 향기를 발할 것이기 때문이죠. 이웃 사랑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하고 싶어 할 거예요.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외치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우리가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을까요? 이사야는 우리에게 구원의 빛이 비치고 있다고 하죠. 이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감사가 곧 우리의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웃을 때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하죠. 우리는 기쁨과 감사를 통해 빛을 발하는 겁니다. 그 빛이 모든 일을 하게 될 거예요. 나를 도울 사람들을 끌어 모을 것이고, 내가 주님의 제자임을 알리게 될 겁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함께할 것이고, 보이지 않던 칠천 명이 보일 겁니다. 그러니 기쁨의 빛을 내세요. 감사의 향기를 피우세요. 그것이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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