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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55 - 나의 죄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더 큽니다.

요한일서 3:20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신 분이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부터 덥네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죠. 뭐 그러면 어떻습니까? 지금이 기회죠. 무더위에는 시원한 냉수가 제격이듯이, 밝은 미소와 넓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냉수 한 사발 같은 우리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환한 미소로 시작하는 여러분 주위에는 늘 상쾌하고 시원한 성령의 바람이 흐를 거예요.

 

오늘 본문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부터 찾아보죠. 본문에 확신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전 구절에 등장했던 단어죠. 여기서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단어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럼 그 확신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봐야죠? 우리가 남을 돕거나 사랑하면, 더 나아가 지금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원리를 지켜나가다 보면 우리는 용기가 생깁니다. 해 보면 되거든요. 사실 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해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다 보면 '이게 되네?' 하게 되죠. 하나님의 원리도 그렇습니다. 내가 기쁨을 유지하면 우리가 아무 일 하지 않아도 관계들이 좋아지죠. 주위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내가 좋은 생각과 감정을 유지하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변해요. 내가 바라지 않아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죠. 그렇게 확신이 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확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 이전에 '마음의 가책을 받는다'는 표현이 있죠? 이게 그냥 읽으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가책인지, 어떤 문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요. 성경에는 이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석을 다 찾아보고 배경까지 알아가며 해석할 수가 없죠. 이럴 때 우리는 성경을 스스로 읽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비록 낮은 단계의 수준이지만 문장의 앞뒤를 잘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풀리죠. 제가 먼저, 확신에 대해 설명을 장황하게 했죠? 이게 실마리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하다 보면 점점 확신이 생긴다고요. 모든 것을 다 알고 시작하는 일은 많지 않죠. 아직 깨닫지 못했어도,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길이 나오고 이해와 깨달음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음의 가책'이라는 말이 나온 거죠. 마음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은 뭔가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혹은 죄가 있어서 그에 대한 꺼림칙함이 있다는 뜻이죠. 한마디로 말하면 죄책감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확신과 관련되어서 이 말이 나왔다면 어쩌면 이런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이제 기쁨을 가져 보려고 해요. 좋은 마음을 품어 보려고 하죠. 그렇게 나를 좋은 생각과 마음으로 채울 때 내 주변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너 같은 것이 무슨 좋은 생각이냐?' '너 따위가 하나님의 원리를 알아?' '여전히 죄를 청산도 못하고는 무슨 좋은 생각이냐?' 뭐 이런 생각이죠. 그래서 엄두를 못 내는 거예요. 또 그런 경우도 있죠. 좋은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매일 묵상도 해보자고 야심 차게 했지만 며칠 지나니 점점 의욕이 상실되기도 하죠. 그때 들리는 생각이 있죠.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 같은 것이 무슨 묵상이야?' '창피하지도 않니? 며칠 하다가 말면 다른 공동체 가족들이 뭐라고 하겠어?' '역시 너는 끈기가 없어' 뭐 그런 생각말이죠.

 

우리에게는 회개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잘못을 고하고 돌아서는 겁니다. 그런데 이 회개를 일으키는 동력이 바로 죄책감이에요. 나에게 죄가 마음에 걸리는 거죠. 양심에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게 되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회개를 착각해요. 죄책감이 회개인 줄 압니다. 내 안의 죄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회개인 줄 알아요. 그래서 매일 후회를 합니다. 괴로워하죠. 죄인이라고 토로하며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죄책감과 회개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죄책감은 괴로워하기만 하고 회개는 그 자리에서 돌아선다는 원칙적인 설명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나의 죄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더 크시다는 것을 믿느냐 아니냐의 차이예요. 회개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죄책감은 늘 나의 죄가 우선이죠. 죄책감이 발동되면 그 이전의 죄들까지 덩달아 소환됩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증명하려고 하죠. '나는 죄인이다' 외치면 되게 믿음 좋아 보이죠? 그러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훨씬 큽니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덮으심이 훨씬 강해요. 주홍빛 같은 죄를 흰 눈 같이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늘 죄에 빠집니다. 죄가 없어지는 완전한 해결은 없어요. 그러나 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용서는 있습니다. 그 용서 앞에 죄는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 그러니 죄를 지어도 믿음의 경주는 계속하세요. 때로 넘어져도 신앙의 경주는 멈추지 마세요. 며칠씩 방황하고, 몇 달씩 자리를 비워도, 그래도 하나님의 용서가 더 크시니 돌아왔다면 다시 눈 꼭 감고, 뻔뻔하게 다시금 도전을 시작하세요. 비록 또 며칠 하다가 말지 몰라도, 그래도 다시 용기가 생기면 또 시작하세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주님이심을 잊지 마시고 다시 시작하세요.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강해도 주님의 용서를 이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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