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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89 - 나를 향한 주님의 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린도후서 12:1~5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 아침이 좋은 것은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니죠. 우리가 마주하는 외부 환경은 변덕이 죽 끓듯 하죠. 그렇다고 세상의 흐름이 좋음의 원천이 되지도 않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의 흐름은 힘 있는 자의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럼에도 오늘을 좋은 날로 외치는 이유는 바로 오늘의 주인이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을 창조하며 살아가기 때문이죠. 혼돈과 공허가 흐르는 오늘을 내가 생기 넘치고 생동감 있는 하루로 만들 수 있기를 빕니다.

 

자랑이 12장까지 이어집니다. 내친김에 바울은 자신이 경험했던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자랑합니다. 그 체험은 아마도 바울이 유대교 근본주의자 시절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러 살기 등등 한 모습으로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때 경험했던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바울은 하늘에서 비친 밝은 빛으로 인해 땅에 꺼꾸러져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되죠. 이는 사도행전 9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 바울이 직접 말하고 있죠.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이야기인지라 사도행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내밀한 간증이 되겠죠. 

 

재미있게도 바울은 3인칭 화법을 사용하네요. 자신을 마치 3인칭 주인공처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14년 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하는 것 또한 이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해 주죠. 그리고 그때 일어난 일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고 말이죠.

 

그는 당시 자신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신비한 경험이죠. 이는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의지하고 붙잡았던 지식이나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상식적인 것조차 허물어지는 것이었죠. 어쩌면 바울은 자신도 이런 신비한 경험이 있으며 비록 실제 예수님을 본 적은 없으나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했던 일, 그분이 자신에게 찾아와 친히 길을 알려주신 일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가짜 논쟁에 시달리고, 진심을 의심받았으면 그랬을까 싶을 만큼 그는 이를 그동안 처절하게 자랑하고 떠벌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그 기회가 왔을까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자랑을 한 김에 묵은 자랑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는 순간, 역시 바울은 이 속에서도 자랑하는 것이 남다름을 보여줍니다. 

 

그가 진짜 자랑하고픈 것은 자신이 주님을 만났고, 그분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들었으며, 그분이 자신을 친히 선택하여 부르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그가 자랑하고 있는 것은 자신조차 한 번도 원하거나 바라지 않았던, 꿈조차 꿔보지 않았던 일을 하나님께서는 꿈꾸시고 계획하시고 작정하셨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자신도 이제 주님을 따라 더 크고 높은 소망과 꿈을 꾸기로 작정했음을 자랑하려는 것이죠. 

 

나를 향한 주님의 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를 향해 주님은 어떤 소망, 어떤 상상을 하고 계신지 아시나요? 그 깊고 넓은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조차 나를 향해 꿈꾸고 상상하지 못하는 더 크고 원대한 꿈이신 것만은 확실하다는 거죠. 그러니 나도 나를 향한 아름답고 놀라운 꿈, 상상을 주님 따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주님께서 나를 만드신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닐까요? 그것이 주님을 따라 함께 걷는 믿음의 길 아니겠습니까? 

 

나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셨어요. 이는 다른 말로, 나는 내가 그렇게 귀한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나보다 더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계심을 알았다는 말이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시고, 얼마나 간절히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이제 그 마음부터 닮는 우리였으면 좋겠어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그 말에 대답부터 믿음이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나도 나를 귀하고 보배롭게, 또한 나에 대한 꿈과 소망을 키우며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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