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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87 - 가만히 계실 때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가장 큰 사랑임을 기억하세요.

고린도후서 11:16~21   거듭 말하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려거든, 어리석은 사람으로 받아 주어서, 나도 좀 자랑하게 놓아두십시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랑하기를 이렇게 장담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게 하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슬기로운 사람들이라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도 참아 줍니다.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골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터놓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해서, 그렇게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자랑을 하려고 하면, 나도 감히 자랑해 보겠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해의 첫 월요일이네요. 오늘은 어제와 같은 하루이지만 새로운 마음과 변화의 시작을 결심한 우리의 발걸음은 전혀 다른 걸음일 것입니다. 또 다른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복된 새해, 은혜를 누리시길 빕니다.

 

제가 어릴 적 일입니다. 그렇게 개구쟁이는 아니었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분해해 보는 일이 잦았어요. 특별히 시계는 저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죠. 탁상시계를 분해했다가 조립을 하는 일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점점 탁상시계에서 다른 시계들로 관심은 이어졌습니다. 당시 거실에 괘종시계가 있었는데 그것을 분해했다가 조립하고는 괘종이 움직이지 않아서 가슴 졸인 일도 있었죠.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끼시는 시계가 있었는데요. 줄이 달린 시계, 회중시계라고 하나요? 굉장히 고급스러운 시계였습니다. 그것을 뜯어보고 싶은 마음에 며칠을 노리다가 마침 아버지가 출장을 가신 기회를 틈타 분해에 들어갔죠. 분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조립을 하려니 이게 쉽지 않았어요. 너무 작은 부품들로 점차 헛갈리기 시작했죠. 며칠을 매달렸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걸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조립을 다 마쳤는데 방바닥에는 부품이 몇 개 뒹굴고 있었으니까요. 하는 수 없이 그냥 부품을 안에 넣고는 뚜껑을 닫아 버렸습니다. 물론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죠. 그리곤 몰래 본래 있던 아버지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셨죠. 며칠을 조마조마했습니다. 귀중한 시계를 망가뜨렸으니 혼날 일이 남은 거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버지가 아무 소리를 안 하시는 거예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순간 시계가 다시 가나? 싶기도 하고, 아버지가 모르고 계신가? 싶고, 그러다 저도 잊어버렸습니다. 혼나지 않았으니 그 일은 저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죠.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 5학년쯤이었을까요? 그 시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은 1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30년이 넘어서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아버지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그 회중시계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그 회중시계는 제가 고장 낸 그대로였습니다. 그것을 30년 동안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거죠. 이사도 몇 번 했는데 그때마다 가지고 다니셨던 모양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을. 30년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저는 아버지가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완전범죄라고 하나요? 내가 그런 줄 모르신 걸까? 그냥 시계가 고장 났다고 여기셨을까? 수많은 생각을 했었지만 30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요. 

 

생뚱맞은 옛날이야기에 당혹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이야기가 오늘 말씀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으시겠죠?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는데 저는 제일 먼저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왜일까요?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의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죠. 이미 묵상한 바 있는데요. 그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왜곡하고, 하면 하는 대로 폄훼해서 바울을 욕보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런 왜곡과 폄훼는 통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멸시와 모욕을 당하기도 했죠. 그리고 오늘 한 마디를 합니다. 마치 알고도 넘어갔던 그가, 할 말이 많아도 말하지 않았던 그가, 대응을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려해서 안 했던 그가 이렇게 말하죠.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약해서 참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를 말입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잠잠하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에요. 누구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분이 가만히 계신 것은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잠잠하신 이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도 아니에요. 가만히 있는 것이 사랑 이어서입니다. 침묵하는 것이 은혜여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배려여서죠.  

 

가끔 큰 소리를 치고 난리를 부려야 권리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힘이 없는 줄 알고, 아무 말하지 않으면 무시해도 되는 줄 아는 이들이 있죠. 그런 생각과 태도는 후집니다. 진정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값진 금은보석에서 감사를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감사를 찾고 아픔 속에서 돌보시는 손길을 느끼죠. 묵묵히 일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헌신하는 자를 귀히 여기시는 주님이시기에 그분의 마음을 닮은 이들은 낮은 자리의 힘을 압니다. 

 

올해는 아무 일 없는 잔잔함 속에서 가장 귀중한 축복을 느끼고, 덮어주시는 은혜 가운데 감사를 발견할 줄 아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계실 때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가장 큰 사랑임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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