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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83 -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흘러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8~9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매서운 추위가 우리를 움츠리게 하네요. 미세먼지도 기승을 부립니다. 그래도 새로운 하루를 여는 우리의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미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이며 내 마음에 좋은 생각과 기대와 소망을 뿌렸던 우리이기에 오늘도 내 주위를 따스하게 만드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하고 있죠. 이번에는 그가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며 생활했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는 자비량 선교사로서 자신이 일을 해서 벌어가며 복음을 전했죠.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지금 거론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거짓 교사들 중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헌금을 강요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죠. 이미 바울은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왜곡하고 과장하여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다른 추측은, 어쩌면 거짓 교사들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명목으로 거액의 헌금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할 당시 취했던 태도를 떠올리며 지적하려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바울은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어떤 오해나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보여요. 그러지 않아도 트집을 잡고 해코지를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이들이 많았던 터라 바울은 그리 했던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 생활을 해가면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던 거죠. 그 어떤 일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 탓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저는 바울에게 후원을 했던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에 눈길이 갑니다.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이 자신을 후원했던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울이 그 후원을 '빼앗았다'라고 한 표현입니다. 마치 주지 않는 것을 갈취해 온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말이죠. 어디 바울이 그랬겠습니까? 이 표현은 아마도 결코 후원할 처지도, 입장도, 또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그들이 자신을 후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마케도니아 지역 교회는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도 초신자들이죠. 순서만 다를 뿐 고린도 교회나 별반 다르지 않은 이제 걸음마 단계의 교회였어요. 그런데 그 교회가 다른 교회를 선교한 셈입니다.

 

복음의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혜를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거죠. 은혜는 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이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죠. 그 은혜를 누군가에게 나눠야 합니다.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거죠. 이것이 복음의 성질입니다. 좋은 것을 알려야 하고, 배운 것을 나눠야 하죠.

 

우리교회가 운영하는 다림교육이 그런 교육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지난주, 감사의 밤 모임을 했습니다. 고마운 분들, 후원과 봉사를 해준 분들께 감사를 전하는 자리였죠. 그 모임에 사회를 본 학생이 있습니다. 대학생인데요. 그 친구는 다림에서 교육적 수혜를 받은 친구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다림의 선생님과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에게 멘토링 교육을 받았고 꿈을 키웠죠. 그 친구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다림에 다시 왔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며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교육적 재능을 가지고 교육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먼 학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다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받지 않지만 그의 수고와 헌신은 계속되었습니다. 단지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이 꼭 필요할 때 받은 교육적 수혜와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는 일념 하에 말이죠.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흘러야 합니다. 복음은 그렇게 연결되어야 하죠. 받은 것을 돌려주며 성장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은혜의 통로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분에게 받은 사랑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죠. 그 수고와 헌신에 주님은 멈추지 않는 은혜와 축복을 공급하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우리 가운데도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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