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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81 - 우리는 잊을 것과 기억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11:1~4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열렬한 관심으로, 여러분을 두고 몹시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여러분을 한 분 남편 되실 그리스도와 약혼시켰습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추위가 매섭네요. 모든 공동체 가족들의 건강과 안위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추위에 더욱 추운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도움의 손길들을 허락하시고 소외된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11장에 들어서서 바울은 조금 더 강도 높은 지적을 이어 나갑니다. 자신을 우리와 그리스도의 결혼을 중매한 사람으로 묘사하죠. 그런데 그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더 좋은 사람이 있다고 꼬드겼을까요? 아니면 상대방의 흠결을 부각시키며 사이를 갈라놓았을까요? 아마도 서로의 조건들을 나열하며 순수한 사랑을 조건 있는 사랑으로 변질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바울은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죠. 그것은 잘못된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좋은 것들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려도 나쁜 것들은 어이없을 만큼 쉽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이 있죠.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명확하게 구분이 가는 일도, 당사자인 그들에게는 무엇에 홀린 듯 옳지 않은 일에, 다른 복음에, 허무맹랑한 사설에 잘도 빠집니다. 정설보다는 야설에 더 관심을 갖고, 진실보다는 거짓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가짜 뉴스가 퍼지는 속도는 어마어마합니다. 음모론은 왜 그리 흥미진진할까요?

 

거짓 교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뛰어나서도, 혹은 생명력이 출중해서도 아닙니다. 이는 오로지 그 거짓에 반응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황당해 보이고 허접해 보이는 보이스 피싱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그 엉성한 스토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우리 때문이죠. 

 

거짓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거짓 영은 스스로 살지 못해요. 누군가 생명을 불어넣고, 누군가 힘을 주기 때문에 활동할 수 있는 거죠.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입니다. 불안, 공포, 걱정과 근심들이 다 그래요.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내가 맞장구치지 않으면 신기루 사라지듯이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라질 것들에 내가 인공호흡을 하고, 되살려 이제는 감당하기조차 힘든 거대한 힘이 되어서 나를 삼키고 말죠.

 

가짜에 눈길을 주지 마세요. 평안을 깨는 일에 마음 주지 마세요.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에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 한번 살아난 거짓은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커져서 이제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리니까요. 속상함, 분노, 미움, 불만뿐만 아니라 아픔, 슬픔, 고통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의 시작은 각기 달라도 그것을 키우고 가꾸고 자라게 하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관심 두지 말아야 해요. 

 

우리는 잊을 것과 기억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선택해야 하죠.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 선택이 우리의 믿음이죠. 내 기억에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 내 기억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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